(14)주원상 특파원-늘어가는 자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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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프랑스에서는 하루에 약 29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자살률의 증가는 서구 선진국에서 유행처럼 돼 가는 추세지만 프랑스의 경우 연간 10만명에 20명꼴로 이웃인 영국의 8명이나 이탈리아의 6명을 훨씬 웃돌고 있다.
80년에는 금세기에 들어와 처음으로 한햇동안 1만5백명이 자살, 기록을 세웠다.
지속적인 경제 위기로 인한 실업률 증가와 이에 따른 생활고나 좌절이 자살률을 높이고 있다는 얘기도 있지만 더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이탈리아의 경우와 견주면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재작년과 작년에 파리에서 있었던 여우 「진·시버그」나 그의 전 남편인 작가 「로맹·게리」의 자살과 여우 「로미·슈나이더」의 자살이 그러했듯 프랑스인들의 자살은 아무래도 어쩔 수 없는 「고독」에서 비롯하는 일이 많은 것 같다.
『두살난 아들을 남겨 놓고 아내가 달아난 지 4년이 됩니다. 나는 이제 더 버틸 기력이 없어요.』(29세의 홀아비) 『나는 줄곧 혼자 살아왔어요. 결혼한 두 아들이 있지만 며느리들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는군요.』(74세의 과부) 『내겐 편지 보낼 곳 한군데 없읍니다. 어머니가 계시지만 그녀는 글을 몰라요. 편지라도 주고받을 사람이 제겐 절실히 필요해요.』 (수감중인 10대)
이른바 인생 상담소인 프랑스의 「SOS-우정」이란 기관에는 해마다 약 35만건의 고민 호소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고 하는데 고민의 대부분이 이처럼 외로움이다.
파리에서는 흔히 혼잣말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멍한 눈으로 혼자 거리를 걸으며 누구에게도 아닌 독백을 하거나 지하철·버스에 앉아서 홀로 중얼대는 이가 많다.
젊은이도 있고 늙은이도 있다. 여자도 있고 남자도 있다. 어느 만큼은 정신 이상자도 섞였겠으나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을 달래지 못해 그런다고 한다.
햇볕이 따스한 날이면 시내곳곳의 공원벤치에 혼자 앉아 있는 많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을 만난다. 이들은 잔잔한 연못을 바라보며 중얼대기도 하고, 구두뒤축으로 땅바닥을 후비며 혼잣말을 하기도 한다.
자살의 이유야 가지각색일 수 있으나 프랑스 사람들의 극단적인 개인주의, 이혼과 혼외동거의 증가로 인한 점차적인 가정의 붕괴가 고득이란 병을 낳고 많은 사람들을 자살로 인도하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던 「자살방법」이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것도 우연은 아닌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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