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값「27불 시대」가 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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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34 달러 기준 유가 체제가 예상 밖의 큰 폭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다.
지난달 23일 석유 수출국 기구(OPEC)의 제네바 회의가 결렬되기 훨씬 이전부터 이미 외국의 일부 석유회사·석유 전문가들 사이에선 기준유가 25∼28달러 시대가 곧 오리라는 성급한 예측들이 나왔었지만 대부분의 국내외 전문가들은 기준유가의 하락이 30달러 선에서 일단 머물 것이라는 비교적 조심스러운 예측들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18일 북해에서부터 높게 일기 시작한 유가인하의 파도는 곧바로 아프리카에 까지 밀어닥쳤고 이는 현재 맹렬한 기세로 페르시아만까지 밀려가고 있어 27달러까지의 OPEC기준 유가 하락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OPEC로서는 북해산 원유의 가격 하락을 기폭제로 하여「유가의 경쟁적 인하」라는 가장 최악의 상태를 맞게 된 것이다.
즉 북해산 원유의 가격 결정권을 쥐고 있는 영국 국영 석유회사(BNOC)가 지난 18일 자국산 원유의 기준가룰 배럴 당 33·5달러에서 30·5달러로 인하하자 아프리카 최대의 산유국인 나이지리아도 따라서 자국산 원유의 기준가를 35·5달러에서 30달러로 5·5달러나 크게 내릴 수밖에 없었다.
나이지리아 원유와 북해 원유는 그 질이 비슷해 나이지리아로서는 가격 경쟁력을 잃지 않기 위해 이같은 큰 폭의 유가 인하가 불가피한 것이다.
이렇게되자 기준유가 34달러 선을 지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온 사우디아라비아로서도 이제는 큰 폭의 유가인하를 피할 도리가 없게 됐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대표 유종인 아라비안라이트는 나이지리아 원유에 비해서 다소 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최소한 3달러의 가격차이를 두어야 세계시장에서 경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우디아라비아의 기준 유가가 현재의 34달러에서 27달러로 떨어지고 말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으로 나돌고 이번 나이지리아의 유가인하가 OPEC카르텔의 붕괴를 뜻한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현재 열리고 있는 페르시아만 6개국 회의(GCC)에서 유가인하의 폭이 합의되면 사우디아라비아는 곧 OPEC 회의를 소집, 기준유가의 인하를 단행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이같은 유가인하의 영합이 우리 나라에는 약1개월의 시차를 두고 닥친다.
중동으로부터의 원유수송에는 약1개월이 걸리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기존 유가가 27달러로 7달러 떨어지면 국내유가는 약 l8·2%의 인하요인을 얻는다. 여기에 지난해의 환율 상승 등으로 국내 유가가 안고 있는 인상요인 0·8%를 감안하면 결국 국내 유가에는 약 18·4%의 인하요인이 남는다.
만약 이 만큼이 모두 국내 유가에 곧이곧대로 반영된다면 도매 물가 중 석유류 제품 값의 가중치는 산업용 전력 등 중간재 투입까지를 모두 고려해서 약 22%에 달하므로 결국 국내 도매물가에는 약3·8%의 인하요인이 생기게된다.
그러나 정부는 원유가가 떨어져도 이를 모두 국내유가에 반영하지 않고 안정기금 등으로 쌓아 두었다가 다음 기름 값이 오를 때 완충제로 쓴다는 계획이므로 유가인하는 10%안으로 억제될 전망이다.
또 시일도 빨라야 3월이 될 것이다.
한편 나이지리아와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기준 유가를 5·5∼7달러씩 내린다면 다른 산유국들도 6∼7달러씩의 유가인하를 단행하지 않을 수 없고 따라서 국내 도입 원유의 약62%를 차지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가 7달러, 나머지 원유 도입선(도입비중 38%)들이 평균 6달러씩 기준유가롤 인하한다면 국내 원유의 수입가격은 배럴 당 약6·6달러씩의 인하 효과가 있다.
이렇게 되면 올해 작년과 비슷한 1억8천만 배럴의 원유를 도입한다고 할 때 연간 약 11억9천만달러의 원유 도입비를 경감할 수 있게 된다.
반면 우리의 대 중동 건설수주는 유가가 큰 폭으로 떨어질수록 더욱 큰 타격을 받게되며 건설 외화입금 액도 더욱 줄어들 것 또한 명확하다.
최근 KDI의 시산으로는 기준 유가가 27달러까지 떨어질 경우 대 중동 건설수주는 지난해의 1백14억 달러에서 올해 약65억 달러로 약43%나 줄어들게 된다. 유가하락의 폭이 크면 그 만큼 그 역기능도 크게 작용하는 것이다. 기준유가 30달러 가정을 토대로 KDI는 최근 GNP 0·32% 성장효과를 계산해 냈지만 중동 건설 퇴조에 따른 실업의 발생, 관련산업에 의 파급효과, 국내 금융기관들에 미칠 타격 등을 고려하지 않은 성장 수치는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유가가 예상외로 크게 떨어졌다 해서 반가와 하지만 말고 역 오일쇼크의 충격을 최소화하는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할 때인 것이다.<김수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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