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 북한 인권을 공식 의제로 채택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 말미에 오준(59·사진) 주유엔 대사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흘러나왔다.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 주민들은 그냥 아무나(anybodies)가 아닙니다. 비록 지금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어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겨우 수백㎞ 거리에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는 (북한의 인권 유린을 고발한)유엔 북한조사위원회의 보고서를 보며 가슴이 찢어지고, 탈북자들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같은 비극을 겪은 듯 눈물을 흘립니다…(중략). 부디 훗날 우리가 오늘을 되돌아볼 때 북한 주민을 위해 옳은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회의장은 숙연해졌다. 인권운동가 출신인 서맨사 파워 주유엔 미국 대사는 오 대사의 연설에 귀기울이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울림은 회의장을 넘어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번졌다. 특히 한국의 ‘2030세대’의 반응이 뜨거웠다. 연설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공유하며 북한 주민의 아픔에 무심했던 자신을 반성한다는 댓글을 올렸다. SNS 상에선 ‘오준 대사’ 신드롬이 확산됐다.
뉴욕의 오 대사에게 28일 전화를 걸었다. 그는 “예상치 못했던 관심에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SNS를 통해 오 대사에게 직접 소감을 전한 이들이 1주일도 안돼 수백명에 달했다고 한다. 800명 정도였던 오 대사의 페이스북 친구는 최근 사흘만에 1200여명으로 늘었다. 그는 “친구를 신청해온 사람들이 대부분 학생, 군인 등 젊은이들이었다. 북한 문제에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젊은층 역시 동포의 고통을 공감하고 있다는 점을 느꼈다”고 말했다.
오 대사의 연설은 원고도 없었던 즉흥 연설이었다고 한다. 실제 동영상을 보면 오 대사는 5분 정도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밝히다가 이후엔 다른 이사국 대표들을 똑바로 바라보며 연설한다. “북한 주민들에 대한 우리의 특별한 감정, 그 절박함을 전달하려면 공식 입장만으론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오 대사는 “다른 나라에게 북한 인권은 국제 인권 문제들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우리에게는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이 안보리 이사국 임기를 북한 문제로 마무리한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아픈 우연인지를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른 국가들 생각을 다 들은 뒤 소회를 밝히고 싶어서 맨 마지막 순서로 발언을 신청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오 대사도 광의의 실향민이다. 그는 “어머니의 고향이 개성이고, 장인어른이 함경도에 살다가 6·25전쟁 때 월남했다”며 “장인어른은 계속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했지만, 끝내 북에 있는 가족들을 만나지 못한 채 10년 전 쯤 작고했다. 그 아픔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1978년 외교부에 입부한 오 대사는 외교관 생활의 대부분을 유엔 등 다자외교 분야에서 근무했다. 지난해 9월 유엔 대사로 부임했다.
유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