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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뚜벅 걷는 바보 많아져야 더 좋은 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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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봉사단체 ‘바보클럽’의 강민수 회장은 “이 사회에 기여한 위인들의 삶을 보면 누구보다 정직하고 순수했다. 그 바보스러움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사회를 바꾼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약삭빠른 이들이 살아남는 세상, 누구도 ‘바보’가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바보들이 많아져야 세상이 바뀐다는 ‘바보철학’을 십수년째 설파하는 이가 있으니, 올해로 창립 10주년을 맞는 봉사단체 ‘바보클럽’의 강민수(64) 회장이다.

최근 자신의 철학을 담은 책 『바보 교과서』(참솔)를 펴낸 그를 만났다. 그가 불쑥 등산 이야기를 꺼냈다. “등산을 할 때 정상까지의 거리를 계속 계산하며 올라가면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가다보면 어느덧 정상에 다다르게 되죠. 바보란, 이렇게 천진하고 순수한 사람들을 말해요.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이들이죠.”

 바보클럽은 2004년 작은 모임으로 시작했다. 그가 2001년 출간한 『내가 바보가 되면 친구가 모인다』라는 책을 읽은 독자들이 알음알음 모여 친목단체가 만들어졌고, 모처럼 모였으니 의미있는 일을 해 보자는 뜻에서 ‘땀바(땀 흘리는 바보)봉사단’을 발족했다. 현재는 인터넷 회원이 7000여 명에 이르고, 매주 200여 명이 모여 노인 시설, 장애인 시설 등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부산의 대표적인 봉사단체로 성장했다. 운영비는 ‘4750후원회’의 성금으로 충당한다. 바보클럽 창단 당시 한 TV 프로그램에 나온 소녀 가장이 “놀이공원에 가고 싶은데, 그러려면 필요한 돈이 4750원”이라 말한 것이 계기가 돼 시작된 소액모금운동이다.

 강 회장은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시 공무원으로 일했다. 20대 후반, ‘무분별한 벽보질서를 바로잡아 보겠다’는 생각으로 공무원을 그만두고 광고회사 삼원기업을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각종 벽보를 한데 모은 ‘시민게시판’이 그의 아이디어로 탄생했다. “돈을 벌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이 일은 내가 해야 한다는 소명의식이 있었어요. 그래서 사업을 확장하지 않고 34년간 한 가지 일만 계속해왔죠. 현재도 부산 내 1000여 개 시민게시판을 관리합니다.” 30대 후반 방송통신대에 진학해 경영학을 전공하고 동아대 언론홍보대학원을 졸업한 만학도이기도 하다.

 평탄치만은 않은 젊은 시절을 보낸만큼 요즘 청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도 많다. 매일 아침 4시30분에 일어나 바보클럽의 회원들(회원의 70% 이상이 20~30대)에게 쓴 편지가 『바보 교과서』에 담겼다. “힘든 시기를 보내는 젊은이들에게 ‘현재에 만족하라’고 아무리 말해도 받아들여지기 힘들어요. 하지만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만나 꾸준히 봉사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스스로가 세상에 필요한 존재라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몸으로 부대껴야 찾아오는 깨달음이죠.” 다가오는 새해의 소망을 묻자 그는 “부산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봉사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것, 그리고 바보클럽의 젊은 회원들을 이 사회의 지도자로 키워내는 것”이라고 답했다.

글=이영희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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