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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과 대안: 담뱃값 인상 논란

"금연 위해 값 올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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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정부가 세계 최고 수준의 성인 남성 흡연율(52.3%)을 낮추기 위해 지난해 12월 말 담뱃값을 500원 올린 데 이어 하반기에 500원을 더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500원 인상안을 담은 건강증진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둔 상태다. 정부는 담배 가격 인상만큼 효과적인 금연 정책이 없다고 주장한다. 여기다 금연 구역을 PC방과 공장 등으로 확대하고 담배회사의 이미지 광고 등을 규제하면 금연 효과가 더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호락호락 법안에 동의해 줄 것 같지 않다. 담배 판매량이 가격 인상 전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금연 효과는 없이 서민에게 부담만 준다며 제동을 걸고 있다. 담배소비자단체는 "답뱃값을 올린 지 1년도 채 안 돼 또 올리는 것은 지나치다"며 오히려 "담배 소비자들로부터 거둬들인 돈을 엉뚱한 데 쓴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기국회에서 벌어질 담뱃값 인상 논쟁을 미리 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사회=정부가 흡연율을 낮추기 위해 이르면 10월께 담뱃값을 500원 더 올릴 계획이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500원 올린 이후 효과가 없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가격 인상의 효과를 어떻게 봐야 하나.

▶이종구=담뱃값을 10% 올리면 흡연양이 4% 준다는 게 세계적으로 입증돼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효과가 있었다. 지난 20년간 금연구역 확대 등의 비(非)가격정책으로 흡연율을 낮추려 했지만 가격을 올리는 정책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가격을 올린 이유는 청소년들이 담배를 배우지 않도록 진입장벽을 만드는 것이다. 또 가난한 사람들이 흡연량이 많고, 담배 때문에 병에 걸려 회복이 안 된다. 이런 사람들을 보호하는 게 담뱃값 인상의 주목적이다.

▶김원년=가격을 올리더라도 대부분의 흡연자가 담배를 계속 피운다고 하지만 착각이다. 값을 올리면 덜 피우고 끊기도 한다. 얼마나 많이 끊느냐가 관건인데 지난 23년간 추정치를 보면 가격을 두 배 올리면 적어도 40% 정도 흡연율이 줄어든다는 결과가 나왔다. 담뱃값을 두 배 올리면 가계 지출비 중에서 보건의료비 지출 부분이 30% 줄어든다. 값이 오르면 담배 소비가 줄고 건강이 좋아져 의료비가 줄어든다.

▶고경화=지난해 말 500원을 올린 뒤 담배 판매량이 6월에는 지난 4년 월평균 판매량(4억 갑) 수준으로 회복됐고 8월에는 4억6000만 갑으로 평균보다 늘어났다. 가격 인상이 흡연율을 낮추는 데 별 효과가 없었다. 담배는 가격탄력성이 그리 크지 않다. 즉 값이 올라도 소비량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정경수=담뱃값 인상은 시대적인 정서와 문화 등을 고려해야 한다. 값을 올리면 금연이 확산된다는 논리는 맞지 않다. 영국이나 캐나다.프랑스보다 미국.일본.이탈리아의 흡연율이 높은 편이다. 담뱃값이 가장 높은 영국의 흡연율이 가격이 훨씬 낮은 미국보다 높게 나타나는 현상은 무엇을 뜻하겠는가.

▶ 담뱃값 인상 여부를 두고 각계 전문가들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사진 왼쪽부터 김원년 교수, 이종구 국장, 강치원 교수(사회), 고경화 의원, 정경수 회장.[강정현 기자]

▶사회=담뱃값 인상과 흡연율 관계를 좀 더 구체적으로 논의해 보자.

▶김원년=담배를 6개월 끊었다면 금연에 성공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담뱃값을 500원 올린 뒤 흡연자 700명과 비흡연자 300명을 대상으로 올해 1, 3, 6월 금연율의 변화를 추적 조사했더니 금연율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끊은 사람이 일부 돌아오지만(다시 흡연) 새로 끊는 사람이 생긴다. 지난해 12월 담뱃값 인상은 금연에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이종구=7, 8월 담배 판매량이 지난 4년 월평균 수준으로 돌아왔다고 하지만 1~7개월 판매치를 누적하면 지난해의 48%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판매량이 늘어난 것은 하반기 인상을 앞둔 사재기 가수요 때문이다. 연말이 되면 올해 39억~40억 갑 팔려 지난해보다 7.7% 줄어들 것으로 본다. 사재기 때문에 판매량으로는 흡연율의 변화를 정확히 알기 어렵다.

▶고경화=노르웨이는 담뱃값이 10달러가 넘어 세계적으로 가격이 높은 나라지만 흡연율은 27%다. 스웨덴은 담뱃값 5달러에 흡연율은 16%다. 가격과 흡연율은 별 관련이 없다는 뜻이다. 인도는 우리보다 담뱃값이 싼데도 흡연율은 우리나라보다 낮다. 문화적인 환경과 건강에 대한 관심도, 삶의 질 추구 정도, 스트레스 등을 따져야 한다. 흡연율을 가격과 연결시키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이종구=1994년 이전까지는 금연정책을 펴지도 않았는데 흡연율이 연평균 0.45%포인트 정도 줄었다. 94년에 공공장소 금연 등의 금연정책을 취한 이후 성인 남성의 흡연율이 연평균 1.52%포인트 떨어졌다. 그런데 지난해 연말 500원 인상 이후 5.5% 떨어졌다.

▶고경화=99~2003년에도 흡연율이 떨어졌는데 (지난해 말 이후 감소분이) 자연감소인지 가격 인상 때문인지, 아니면 웰빙을 강조하는 분위기 때문인지 심도있게 고찰해야 한다. 2002~2003년 흡연율이 많이 떨어졌는데 고(故) 이주일 선생의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

▶정경수=소비자의 웰빙 욕구, 환경의 변화, 생활의 질 변화 때문에 매년 흡연율이 1.6~1.8%포인트 감소하고 있다. 이번 감소 역시 자연감소에 불과하다.

▶사회=흡연율 감소 효과에 관계없이 담뱃값 인상이 물가상승을 부추기고 경제성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지적이 있다. 특히 저소득층 서민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커진다는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고경화=재경부 자료에 따르면 담뱃값을 500원 올리면 소비자 물가가 0.3% 상승한다고 한다.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임금이 연동해서 오르고 최저임금에도 문제가 된다.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 급여도 오른다. 국민 실생활에 미치는 효과가 엄청나게 크다. 담뱃값 인상에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정경수=국회에서 예산 부족을 도와준다는 측면에서 지난해 말 500원 인상에 동의해준 것으로 안다.

▶이종구=논리의 비약이다. 세수 부족을 채우려는 게 아니다. 담배가 물가를 올린다는 것도 맞지 않다. 일부 선진국은 소비자 물가지수에서 담배를 뺐다. 기초생활비에서 담배는 빠진다. 필수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건강에 나쁜 중독성.발암 물질을 경제성장과 연계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김원년=담뱃값 인상 때문에 물가가 오르는 것은 사실이지만 경제성장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논리는 비약이다. 물가상승도 한 번에 그치고 그 영향이 미미하다. 경제성장에 영향을 미치고 산업 전체에 영향을 준다는 주장은 소설이다.

▶고경화=한국은행 총재가 담배 때문에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소설이 아니다. 소비자 물가지수를 결정하는 500여 개의 상품과 서비스 중에서 담배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흡연인구가 1200만 명이다. 많은 인구가 소비하는 것을 빼면 물가지수가 왜곡될 것이다.

▶이종구=지난해 담배를 사재기하면서 GDP가 올라갔고 올해는 마이너스 효과가 났다. 지난해와 올해 상황을 합해 보면 담뱃값 인상이 GDP를 떨어뜨린 게 아니다.

▶사회=담배소비자단체에서는 건강증진기금 재원을 오로지 담배에 부과되는 부담금만으로 충당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또 담배부담금으로 거둔 건강증진기금이 부담 주체인 담배 소비자와 무관하게 사용되는 것 역시 부당하다는 지적인데.

▶고경화=건강증진기금의 65%를 건보 재정으로 보충하고, 35%는 건강증진사업에 쓴다. 건강증진사업은 모든 국민이 혜택을 본다는 점에서 흡연자의 돈을 거둬 해야 할 사업이 아니다. 흡연자의 돈을 건보 재정에 충당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국가 재정이나 보험료로 채워야 한다.

▶이종구=건강증진기금은 국회에서 심의한다. 비흡연자에게 이 돈을 쓰는 이유는 간접흡연으로 폐암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비흡연자가 흡연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교육할 필요도 있다. 질병의 30%가 담배 때문에 생긴다. 일일이 치료비를 줄 수 없기 때문에 건강보험에 포괄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고경화=흡연자가 모든 질병의 원흉이라고 보는 것은 비약이다. 건보 재정은 많은 나라에서 세금을 거둬 쓴다. 조세로 하면 국회의 통제를 받지만 지금처럼 건강증진기금으로 운영하면 국회 통제가 어려워진다.

▶정경수=폐암 환자 10명 중 한 두 명이 담배 때문이라고 하지만 폐암의 주원인은 공해다. 자동차 1000만 대가 뿜어내는 매연과 타이어가 마모되면서 발생하는 분진 때문에 폐가 망가지는 경우가 많다. 지금은 연간 건강증진기금의 1.4%만 금연사업에 쓰고 있다. 나머지는 어디로 갔는지 사용처를 분명히 해야 한다. 건강증진기금은 목적세 성격을 갖고 있으므로 기금의 20~30%라도 흡연자를 위해 써야 한다. 흡연자를 위해 병원을 세우고 금단현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안을 내놔야 한다.

▶김원년=흡연자가 사회에 엄청난 피해를 주기 때문에 담배부담금을 전체 국민의 건강을 위해 쓰는 것은 당연하다. 담뱃값을 올리면 단기적으로 서민층 흡연자에게 부담을 주지만 3~5년이 지나면 건강이 좋아져 여러 가지 면에서 부담을 던다.

▶사회=올 하반기에 500원을 더 올려야 하는가. 담뱃값 인상 이외에 다른 금연정책은 없는 것인지. 바람직한 금연정책의 방향은.

▶이종구=가격인상 정책을 계속 쓸 계획이다. 하반기에 500원을 올린 뒤 2010년까지 성인 흡연율을 30%로 낮추기 위해서는 5000원까지 올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대기오염도 문제가 있지만 밀폐된 공간에서 비흡연자들이 보는 간접흡연의 피해에 대해서도 대책이 필요하다. 음식점에서도 흡연을 금지해야 한다.

▶고경화=비가격정책을 제대로 시행하지 않아 금연 효과가 없었다. 담뱃갑에 유해성분으로 타르와 니코틴만 표시한다. 그 밖에 일산화탄소 등 여러 가지가 많은데 이런 것도 함께 표시하자. 그래서 '담배를 피우면 위험하다'는 경각심을 일깨워야 한다. 또 담배에 경고문구만 있지 경고그림(암에 걸린 폐의 모습 등)은 없다. 청소년들은 담배를 살 수 없게 돼 있지만 실제로는 손쉽게 담배를 산다. 이처럼 제대로 시행하지 않는 비가격정책들을 내실화한 뒤 가격인상 여부를 논의해야 한다.

▶정경수=흡연자들은 가격을 올리는 대신 흡연구역을 축소하거나 금연 캠페인이나 프로그램 등으로 (금연운동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국가는 10~20년 후를 내다보고 청소년들이 담배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많은 돈을 투자하고 적극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가격을 올려봤자 요요현상으로 효과도 없을 뿐더러 사재기만 종용한다.

▶김원년=가격을 올려 효과가 있다면 안 올릴 이유가 없다. 가격을 올리는 정책은 비가격정책보다 돈이 적게 든다. 대신 담배 피우는 사람이 당당하게 담배를 피울 수 있게 문화적인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1200만 명이 몸에 나쁜 일(흡연)을 하고 있는데 가격을 올려서라도 못하게 해야 한다.

▶이종구=우리나라는 세계보건기구의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에 66번째 비준했다. 협약은 가격 인상 정책, 담배회사의 스폰서 제한 등의 용어사용 금지 등을 권고하고 있다. 이에 맞춰 가격도 올리고 담배에 경고 그림을 넣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비가격정책은 법령을 고쳐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린다.

▶고경화=담배규제협약에는 비가격정책에 대한 의무사항이 많다. 가격인상 정책은 권고사항이다. 우선순위에서 낮게 본 것이다. 비가격정책을 먼저 시행하고 가격정책이 따라가야 한다. 지난해 12월 가격을 올릴 때 규제개혁위원회에서 가격을 인상하되 1년 동안 효과가 있는지를 보고 재론하자고 했는데 1년도 안 된 상태에서 또 올리려는 것은 규개위의 논의를 물거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정리=신성식 기자 <ssshin@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참석자 명단>
고경화 (한나라당 의원)
정경수 (담배소비자보호협회장)
김원년 (고대 교수)
이종구 (보건복지부 건강증진국장)
사회:강치원 강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