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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같은 사각형이 아닙니다

중앙일보

입력

‘마미’에서 주인공 스티브는 화면 옆의 필러박스를 열어젖혀 ‘자유의 프레임’을 만든다. 이때 1:1의 화면은 1.85:1로 바뀐다. [사진 AT9FILM]

사각의 스크린을 어떻게 채울 것인지는 영화가 발명된 이래 모든 감독들의 고민이었다. 최근 들어 몇몇 작가 감독들의 상상력은 사각의 화면, 그 틀인 화면 비율 자체를 자르고 넓히고 변형하는 데까지 뻗어나가고 있다. 세 가지 화면비를 섞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3월 20일 개봉, 웨스 앤더슨 감독), 1:1 화면비와 그 변화를 통해 극적인 순간을 연출하는 ‘마미’(12월 18일 개봉, 자비에 돌란 감독)만 봐도 그렇다. 그 의미를 화면비의 역사와 함께 짚는다.

영화라는 매체가 최근 겪은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돌비 애트모스 방식이 거둔 사운드의 혁신과 더불어 ‘압도적인 스펙터클’이다. 그 시작은 아마도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다크 나이트’(2008)가 아닐까 싶다. 부분적으로 삽입되긴 했지만 65㎜ 필름으로 촬영된 아이맥스 화면은 이 영화를 영원히 잊지 못하게 만드는 장관이었다. 1년 후 도착한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아바타’(2009)는 3D영화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미래임을 증명했다. 기존의 2K 방식을 뛰어넘은 높은 해상도의 4K 디지털 시네마가 등장했고, 피터 잭슨 감독의 ‘호빗: 뜻밖의 여정’(2012)은 1초당 48프레임으로 촬영됐다. 35㎜ 필름으로 촬영한 와이드스크린 화면이라는 기존 상업영화 포맷은 무너졌거나 선택 사항의 하나가 되었다. 놀런의 최신작 ‘인터스텔라’(11월 6일 개봉)를 보자. 70㎜ 아이맥스, 70㎜, 35㎜, 아이맥스 디지털, 4K 디지털, 디지털 등 극장에서 자그마치 여섯 가지 방식(한국에서는 70㎜ 아이맥스와 70㎜를 제외한 네 가지 방식)으로 관람할 수 있다. 최근 5, 6년 사이에 이뤄진 변화다.

 

1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1.33:1의 낭만적 시절
1-1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2.35:1의 외로운 공간.

1.33:1에서 4:1까지, 화면비 변천사

이런 굵직한 기술적 발전 속에 주목할 부분이 바로 화면비(Aspect Ratio)다. 영화의 가로세로 비율에 대해선 영화의 발명 초기부터 여러 논의와 가능성이 있었다. 무성영화 시절의 화면 비율은 1.33:1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필름의 가로세로 비율이 1.33:1이었기 때문이다. 촬영된 비율 그대로 상영했던 것이다. 변화의 계기는 유성영화의 등장이다. 여러 시도가 벌어졌고, F W 무르나우 감독의 ‘선라이즈’(1927)나 킹 비더 감독의 ‘할렐루야’(1929) 같은 영화는 정사각형에 가까운 1.20:1의 비율을 선택하기도 했다. 표준이 생긴 건 1932년이었다. 미국의 아카데미 위원회가 1.37:1을 35㎜ 유성영화의 보편적인 화면비로 정한다. 이른바 ‘아카데미 비율(Academy Ratio)’의 탄생이었다.

‘아카데미 비율’은 1950년대 들어 영화 산업의 위기와 함께 도전을 받았다. 제작자들은 강력한 경쟁자로 새로 등장한 TV가 구현할 수 없는, 영화만의 스펙터클한 화면비를 만들기 시작한다. ‘와이드스크린(Widescreen)’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유럽은 1.66:1을, 미국은 1.85:1을 새로운 표준으로 삼은 가운데 스크린은 점점 가로로 길어졌다. 시네라마(Cinerama, 길고 깊게 휘어진 곡면 스크린의 왼쪽·가운데·오른쪽을 각기 다른 세 대의 영사기로 투사하는 방식)와 시네마스코프(Cinema Scope, 애너모픽 렌즈를 촬영과 영사에 활용해 최대 2.66:1의 화면을 구현하는 방식)가 등장했고 ‘벤허’(1959, 윌리엄 와일러 감독)는 2.93:1, ‘서부 개척사’(1962, 조지 마샬·헨리 해서웨이·존 포드 감독)는 2.89:1에 달했다. 일찌감치 프랑스의 아벨 강스 감독이 ‘나폴레옹’(1927)에서 1.33:1 화면 세 개를 이어 붙여 4:1이라는 파격적인 화면을 선보인 바 있지만, 화면비가 강박적으로 길어진 본격적 시작은 바로 1950년대였다. 하지만 이후 할리우드의 구원자는 3:1에 달하는 화면비가 아니라 특수효과와 컴퓨터그래픽(CG)에 기댄 어드벤처 블록버스터라는 게 확인됐다. 화면은 더 이상 길어지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화면비를 둘러싼 최근의 실험은 꽤 흥미롭다. 경향은 없다. 적절한 선택이 있을 뿐이다. 영화 한 편에 서너 개의 화면비가 사용되기도 한다. 프레임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이 영화들은 스크린이라는 사각형을 이야기의 수단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스펙터클을 부각시키려는 시도라는 건 여전하되, 이제 관건은 가로보다 세로다. ‘다크 나이트’처럼 1.44:1의 아이맥스 화면으로 관객을 압도한 뒤, 아이맥스 화면을 삽입하는 멀티 포맷 영화의 경우 대부분 스크린의 양 옆보다는 위아래를 공략하고 있다.

2 ‘다크 나이트’의 아이맥스 화면.
3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제로는 교도소의 입구를 찾지 못한다. 그 문은 필러박스에 가려 있다.
3-1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제로는 교도소의 입구를 찾지 못한다. 그 문은 필러박스에 가려 있다.

한 영화에 다양한 화면비를 섞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다양한 화면비를 한 영화에 섞는 본격적인 시도를 보여준다. 웨스 앤더슨은 데뷔작 ‘바틀 로켓’(1996)에선 1.85:1의 표준 화면을 썼고, 두 번째 영화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1998)부터 2009년의 ‘판타스틱 Mr. 폭스’까지 2.35:1 비율을 고집했다. 하지만 그에겐 항상 1.37:1 화면비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이를 ‘로얄 테넌바움’(2001) 때 시도하려 했다가 이루지 못한 아픔도 있다. ‘문라이즈 킹덤’(2012)에서 1.85:1로 잠시 돌아갔던 그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세 가지 화면비를 섞어 영화의 세 시간대를 표현한다. 1930년대는 1.37:1로, 1960년대는 2.35:1로, 1980년대는 1.85:1로 찍었다. 영화의 역사에서 각각의 시대에 유행하던 화면비다. 더 중요한 건 캐릭터와 화면비가 맺는 정서적 관계다. 이 영화에서 호텔 소유주인 무스타파(F 머레이 에이브러햄)는 자신의 낭만적인 과거를 회상한다. 1.37:1 화면의 옛 시절은 아름답기 그지없지만 2.35:1의 현재는 외롭고 한적하다. 이는 미장센과 색채를 통해서도 대비된다. 웨스 앤더슨 감독은 ‘화면비 개그’를 선보이기도 한다. 호텔의 벨보이 소년 제로(토니 레볼로리)가 감옥에 갇힌 지배인 구스타브(랄프 파인즈)를 면회 가는 신이 대표적이다. 1.37:1 장면의 좌우엔 ‘필러박스(Pillarbox)’라고 불리는 검은 띠가 있기 마련인데, 제로는 필러박스 때문에 교도소로 들어가는 문을 찾지 못한다.

4 ‘탐엣더팜’에서 1.85:1의 화면은 서서히 2.35:1로 바뀐다.
4-1 ‘탐엣더팜’에서 1.85:1의 화면은 서서히 2.35:1로 바뀐다.
5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화면비가 2.35:1로 바뀌는 장면. 날치 떼가 레터박스를 침범하는데, 이는 3D 효과로 더욱 강조된다.

이처럼 필러박스 혹은 위아래의 검은 띠인 ‘레터박스(Letterbox)’를 영화적 공간으로 활용하는 시도는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2012)에서도 나타났다. 날치 떼가 물 위를 날 듯 몰려드는 장면에서, 1.85:1이던 화면은 2.35:1로 바뀐다. 그리고 날아오는 날치들은 화면을 벗어나 레터박스 부분을 침범한다. 샘 레이미 감독의 ‘오즈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2013)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의 토대인 ‘오즈의 마법사’(1939, 빅터 플레밍 감독)는 1.37:1의 흑백 화면(캔자스)에서 1.85:1의 색채 화면(오즈 왕국)으로 바뀌는데, ‘오즈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은 같은 순간 1.33:1에서 2.35:1로 화면을 확장한다. 이때 몇몇 장면에서 프레임 밖의 필러박스 부분이 활용된다.

다채로운 효과를 위해 화면비를 섞는 경우도 있다. 2.35:1인 벤 애플렉 감독의 ‘아르고’(2012)는 시위 장면에서 1.85:1 화면을 삽입해 다큐멘터리적인 분위기를 강화한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2.35:1인 ‘님포매니악 볼륨1’(6월 18일 개봉)에서 우마 서먼이 등장하는 ‘제3장 : 미세스 H’ 부분을 1.85:1 화면비로 강조한다. 마크 웹 감독의 ‘500일의 썸머’(2009)에선 톰(조셉 고든 레빗)이 썸머(주이 디샤넬)를 본 첫 날 장면에서 1.20:1의 극단적인 화면비를 사용한다.

 

6 ‘마미’의 1:1 정사각형 화면비는 CD 케이스 형태와 일치한다. 극 중 스티브는 죽은 아버지가 남긴 CD를 듣는다. 이 영화의 화면비는 캐릭터의 추억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셈이다. [사진 AT9FILM]
7 ‘마미’에서 스티브가 카트를 돌리는 장면. 여기서 스티브는 필러박스로 사라졌다 화면 안으로 들어오기를 반복한다. 마치 감독이 정해놓은 프레임과, 혹은 그를 가두는 세상과 힘겹게 싸우는 듯하다. [사진 AT9FILM]

자비에 돌란의 파격, 정사각형으로 만든 ‘마미’

하지만 그 누구도 자비에 돌란 감독만큼 극단적이지 못할 것이다. 그는 신작 ‘마미’에서 그 누구도 사용하지 않았던 1:1의 정사각형 화면을 사용한다. 사실 최근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의 ‘피쉬 탱크’(2009)와 ‘폭풍의 언덕’(2011)을 비롯해, 흑백 무성영화 스타일의 ‘아티스트’(2011, 미셸 아자나비슈스 감독)나 ‘백설공주의 마지막 키스’(5월 1일 개봉, 파블로 베르헤르 감독)나 알렉산더 소쿠로프 감독의 ‘파우스트’(2010) 등이 1.33:1 혹은 1.37:1의 화면을 선택하긴 했다. 자비에 돌란 감독도 ‘로렌스 애니웨이’(2012)를 1.33:1로 찍었는데, 그의 프레임이 정사각형에 가까워진 건 인물 주변의 장애물 같은 화면을 잘라내고 캐릭터의 감정을 증폭시키기 위해서다. 그는 특히 2013년에 1:1 화면비로 프랑스의 록 밴드 ‘인도차이나’의 ‘칼리지 보이(College Boy)’ 뮤직비디오를 찍으면서 이 믿음이 더 확실해졌다고 한다.

그에게 화면비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캐릭터의 감정과 직결되는 장치다. 돌란이 ‘마미’ 직전에 찍은 ‘탐엣더팜’(5월 22일 개봉)의 옥수수 밭 장면은 그런 점에서 인상적이다. 탐(자비에 돌란)은 프란시스(피에르 이브 카디날)에게 억압당하는데, 이때 1.85:1이던 화면은 서서히 레터박스가 내려오며 2.35:1로 바뀐다. 마치 검은 띠가 인물을 짓누르는 듯하다. ‘마미’는 그 반대다. 사회적 억압 속에 있는 스티브(앙투안 올리비에 필롱)는 오아시스의 ‘원더월(Wonderwall)’을 들으며 양 옆의 두터운 필러박스를 열어젖힌다. 이때 화면은 1:1에서 1.85:1로 바뀌며 그에게 자유를 허락한다. 스티브의 장밋빛 미래가 펼쳐지는 장면도 그런 이유로 1.85:1 화면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판타지가 끝나면 화면은 다시 정사각형으로 돌아온다.

자비에 돌란을 비롯해, 여러 감독들의 화면비 실험은 상수(常數)처럼 여겨졌던 프레임을 변수(變數)로 만들어 좀 더 효율적으로 스토리와 캐릭터의 감정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미장센의 작은 혁명이다. 그리고 관객에게 이러한 세세한 실험들은, 어쩌면 테크놀로지 중심의 거대한 스펙터클보다 더 크게 다가오기도 한다.

김형석 영화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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