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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민족대축전과 남북교류협력 발전을 위한 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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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세종연구소 [정세와 정책] 2005년 9월호 게재

지난 8월 14일부터 17일까지 남북 및 해외대표 820여명의 참여 속에 8.15민족대축전이 서울에서 진행되었다. 이 행사에는 남측에서 당국 22명, 민간 대표로 400명, 북측에서 당국 17명, 민간 100명, 축구선수단 65명, 그리고 재외동포대표단 214명이 참가하였다. 북한 대표단은 이번 행사 기간 중 분단 이후 최초로 국립현충원 현충탑에 참배함으로써 암묵적으로나마 1950년 남침에 대한 유감을 표현하는 등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북한 대표단의 참배에 대해 상반된 시각도 존재한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이 사건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필자 나름대로의 해석을 제공하고자 한다.
8.15민족대축전은 준비 부족 등 부분적인 문제점을 보이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남북화해에 크게 기여한 행사였다. 그러나 통일축구경기와 관련하여 일부 언론들이 경기장에서 단일기(한반도기)만을 사용하기로 한 남북 축구협회간의 합의 사항을 무시하고, 태극기 불사용 등에 대해 일방주의적인 주장을 폄으로써 행사의 의의가 훼손되는 결과가 발생하였다. 그리고 지엽적인 사건에 관심이 집중되어 남북한 관계 발전 과정에서 이 행사가 갖는 의의와 향후 과제에 대한 전략적 검토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따라서 필자는 개별 사건 중심의 분석을 넘어서서 8.15축전이 통일과정에서 갖는 의의를 분석하고, 향후 과제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8.15민족대축전과 남북 사회문화 교류협력의 제도화 가능성
8.15축전과 관련하여 주목해야 할 점 중 하나는 이 행사가 지난 6월 평양에서 개최된 6.15통일대축전과 마찬가지로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 북, 해외 공동행사준비위원회’에 의해 준비되었다는 것이다. 6.15공동위의 결성 및 그에 의한 남북행사 추진은 과거 개별 단체들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남북한 사회문화 교류와 협력이 부문별로 정리, 통합되어 제도화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4년간 남북노동자간 교류기구 역할을 해왔던 ‘조국통일을 위한 남북 노동자회의(약칭 통노회)’가 올해 7월에 해체되고 6.15공동위 안에 ‘노동본부’로 새롭게 태어난 것은 바로 이 같은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물론 북한이 경제적 실익을 가져다주는 교류를 우선적으로 수용하고 있기 때문에 단기간 내에 모든 교류가 6.15공동위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6.15공동위의 결성 이후 남북 사회문화교류를 위한 접촉이 해외에서 한반도로 이동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남북 공동행사의 준비를 위한 실무접촉의 일부가 여전히 중국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접촉 장소가 금강산과 개성으로까지 확대됨으로써 기존의 교류가 가지고 있던 고비용과 저속도, 저효율성의 문제가 개선되고 있다.
지난 5년간 남북한 당국간 관계가 ‘평화공존과 화해협력의 모색 단계’에 도달해 있었고, 향후 5년간 ‘제도화 단계’로의 이행이 목표라고 지적할 수 있는 것처럼, 남북 사회문화교류도 지난 5년간은 제도화의 모색 단계였으며, 향후 5년간 제도화를 목표로 해야 할 것이다. 사회문화교류를 위한 접촉의 한반도화가 더욱 진전되어야 하며, 공동행사 남측 준비위와 북측 준비위간에 직통 전화를 개설하여 교류를 위한 접촉의 일상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민간단체의 적극적 대북 설득과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북한 인사들이 남한을 방문하면 할수록 남북협력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되므로 사회문화교류의 활성화는 당국간 대화의 제도화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 따라서 정부는 당국간 대화의 제도화를 위해서도 사회문화교류의 제도화를 지원할 필요가 있고, 남북한 당국간에 합의된 문서인 6.15공동선언 실천을 다짐하는 민간행사에 앞으로도 당국간 대화를 결합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북한 대표단의 국립현충원 참배를 어떻게 볼 것인가
8.15축전에 참가하는 북한 대표단이 한국전쟁 이후 최초로 동작동 서울 국립현충원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우리 사회에서는 그것이 북측의 한국전쟁에 대한 유감 표현으로 받아들여졌으며,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런데 막상 8월 14일 서울에 북측 당국 단장으로 온 김기남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비서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의 환담에서 “조국광복을 위해 생을 바친 분이 있어 방문하겠다는 의견을 제기한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참배 대상을 항일애국지사로 국한하려는 것 아닌가하는 해석을 낳기도 했다. 반면 림동옥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은 우리측 대표단과의 환담에서 “현충원 (참배) 결정은 어려운 것이었고 언젠가는 넘어야 할 관문이다. 6.15시대에는 모든 것을 초월해야 한다”고 밝혔고, 최성익 조선적십자회 중앙위 부위원장도 “6.15 시대에 맞게 구태에서 벗어나 시대정신에 맞춰 화해협력으로 가겠다는 의지”라고 주장함으로써 현충원 방문에 김기남 비서가 밝힌 것과는 다른 의미가 있음을 시사하였다.
만약 항일애국지사에 대해서만 참배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현충원 방문이 어려운 결정이거나 “언젠가는 넘어야 할 관문”이 될 수는 없다. 그리고 북측이 국군묘지로 출발한 동작동 국립현충원의 성격을 모를 리도 없다. 또한 북측 당국 및 민간 대표 30명이 참배한 현충원 현충탑에는 항일애국지사가 아니라 6.25 전사자 위패와 무명용사 유골이 봉안되어 있다. 따라서 김기남 비서의 발언은 그의 실제 행동과는 모순 되는데, 그렇다면 과연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국립현충원 방문은 사실상 1950년 남침에 대한 유감 표현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북한 지도부 내에서 ‘조국해방전쟁’에 참여한 고위간부들은 강력하게 반대 입장을 표명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김정일 당 총비서로서는 6자회담에서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한국의 협조를 필요로 하고 있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전쟁의 책임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유감을 표명하지 않고 넘어가는데 부담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충원 방문이 북측에게는 “언젠가는 넘어야 할 관문”으로 인식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김일성이 일으킨 한국전쟁에 대해 김정일이 공개적, 명시적으로 사과한다면 그의 통치 기반이 침식당할 수 있다. 따라서 김정일은 지도부 내의 참배 반대파를 의식하여 김기남 비서로 하여금 “조국광복을 위해 생을 바친 분이 있어 방문하겠다는 의견을 제기한 것”이라는 입장을 천명하게 한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의 이같은 이중적 태도는 분명 한국전쟁 전사자 가족들에게 불만족스러운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동족상잔의 비극 재발 방지와 평화 정착을 위해서는 대승적 견지에서 김정일의 ‘결단’을 환영하고 그가 보다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도록 남북관계를 이끌어갈 필요가 있다.

남북한 관계의 발전 전망과 한국정부의 과제
8.15축전 이틀째인 8월 15일 김기남 북측 당국 대표단장은 연설을 통해 “우리 쌍방은 잃어버린 지난 1년간의 시간을 되찾고 북남관계를 협력과 단합의 관계로 발전시켜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 중”이라고 지적하였다. 2004년 7월말 탈북자의 대량 한국 입국 이후 약 1년간 남북한 당국간 대화가 중단된 것에 대해 북측이 ‘잃어버린 지난 1년’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북한이 올해 6월부터 남북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한국정부는 북한의 이같은 입장을 적극 활용하여 향후 남북한 관계를 제도화하고 2010년경 남북연합의 낮은 단계에 진입하는 것을 목표로 대북 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한국정부는 특히 9월 13일부터 16일까지 백두산에서 개최될 제16차 남북장관급 회담에서 향후 5년간의 남북한 관계 발전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단기적으로는 남북 장관급회담 대표 및 정상간 직통전화를 개설하여 고위급 수준에서의 협의가 상시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남북 상설협력기구의 설치 및 확대를 통해 남북한 당국간 협의 및 민간 차원의 협력 수준을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할 것이다.
지난 8월 16일 북한 당국 및 민간 대표단장은 입원 중인 김대중 전 대통령을 방문하여 쾌유를 비는 김정일 총비서의 구두 메시지와 평양 초청 의사를 전달하였고, 김 전 대통령은 이를 수락하였다. 따라서 6.15 공동선언을 이끌어낸 김 전 대통령과 김 총비서가 향후 다시 평양에서 만나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고, 재회가 성사되면 남북한간 화해협력의 분위기는 한층 고조될 것이다. 그런데 김기남 비서가 노대통령을 예방하였을 때에는 남북의 어느 쪽도 정상회담 개최에 대해 적극적인 입장을 피력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상회담의 정례화는 남북한이 남북연합의 단계로 나아가고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수립, 공고화하기 위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남북한의 어느 한 쪽도 제2차 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적극적 입장을 표명하지 않은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북한이 8.15축전 기간에 국립현충원에 참배하였으므로 향후 우리 당국 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한다면 김규식, 조소앙 등 6.25때 납북된 인사들의 묘가 있는 애국열사릉을 방문, 약식으로나마 참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애국열사릉에는 물론 남로당 지하당 총책 김삼룡과 지리산 빨치산 대장 이현상 등의 묘도 있지만, 우리 정부 역시 광복을 위해 헌신한 분들이 묻혀 있어 찾아왔다고 참배 동기를 설명하면 될 것이다. 우리 정부가 어떻게 설명하든 간에 애국열사릉 방문은 그 자체로 남북한간의 어두웠던 과거를 정리하고 전쟁 없는 미래를 위해 남북이 함께 나아가는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한국정부로서는 비록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겠지만, 정부 대표단의 평양 방문시 김일성의 시신이 안장되어 있는 금수산기념궁전 방문을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물론 북한은 남측 인사들의 금수산기념궁전 방문을 체제 정당화에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정상회담 개최 합의를 통해 화해 분위기로 나아가던 남북관계가 1994년 조문파동으로 급냉각 되었던 점이나 작년에 조문 문제가 남북 당국간 대화 중단의 한 배경으로 작용했던 점을 고려하면 남측 인사들의 금수산기념궁전 방문 금지 조치는 득보다 실이 훨씬 더 많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정부는 일반인들이 레닌이나 모택동에 대한 존경심 없이도 모스크바 붉은광장의 레닌 묘(석실) 또는 북경의 모택동기념관을 방문하는 것처럼, 한국 국민의 평양 금수산기념궁전 방문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경제력이 북한보다 33배나 되는 상황이므로 이제는 과거의 체제경쟁적 관점에서 과감하게 탈피할 시점이 되었다.
한국정부가 일반인들의 금수산기념궁전 방문 허용 조치를 내린다면 이는 북측에게 적극적 대북 화해 메시지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한국정부는 남북화해 분위기를 고조시켜가면서 과거 북한이 거부하였던 남북한 당국간 평화체제 구축 논의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군사 분야에서의 합의 도출은 다른 분야에서보다 훨씬 어렵겠지만, 6자회담에서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논의와 북한대표단의 현충원 방문이 시사하듯이 남북한간 안보대화를 위한 환경은 서서히 개선되고 있다.
한국정부는 남북화해 분위기가 고조되어 가고 있는 시점에서 북한 및 ‘친북’ 사이트에 대한 인터넷 접속 차단 조치의 해제를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 될 것이다. 북한 및 친북 사이트가 북한의 체제 선전에 활용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보고 북한체제를 동경하게 될 국민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북한체제의 폐쇄적 특성으로 인해 북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북한의 핵보유 선언 및 6자회담 참가 등으로 인해 대북 정보가 더욱 필요한 시점에 북한 사이트에 대한 접근을 차단함으로써 한국 정부 및 전문가가 과연 무엇을 얻었는지 냉정하게 검토해보아야 한다. 북한과의 모든 접촉에는 일정한 비용과 위험 부담이 존재한다. 그러나 접촉과 교류를 통해 실(失)보다 득(得)이 많다면, 정부는 과감하게 실(失)을 껴안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입장을 가져야 할 것이고, 언론과 전문가들은 정부가 그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출처 : 세종연구소 [정세와 정책] 2005년 9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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