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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죽어가는 공교육 자유학기제로 살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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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동일
서울대 교수·교육학
BK21Plus 미래교육디자인
연구사업단장

우리 교육에 미래가 있는가.

 한국 사회는 낮은 출산율, 빠른 고령화, 단일 문화에서 열린 문화로의 전환,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 정보·과학기술의 발달 등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이 같은 미래 사회의 변화를 진단해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교육 비전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미래교육의 방향에 맞춘 학교 시스템의 개편이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 교육현장에는 미래학교를 구상하는 희망의 언어 대신 학교 현실에 대한 실망과 좌절의 용어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학교 붕괴’ ‘교권 실추’ 등 교육현장을 부정적으로 표현한 말들이 거침없이 나오고 있다. 버릇없는 아이, 스승이기를 포기한 교사, 자기 아이만 챙기는 이기적인 학부모, 변화에 저항하는 권위주의적 관리자, 과장된 일부 언론 보도, 장기적인 비전 없이 교육문제를 난도질하는 교육 개혁주의자 등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비난하는 모습을 자주 접하게 된다. 더 나아가 학교교육에 대한 실망이 학교 무용론이나 학교 해체 주장으로 증폭되고 있는 현실이다.

 교육 위기의 악순환 고리를 끊고 우리나라 교육의 미래를 가늠해 보기 위해 먼저 우리가 꿈꾸는 미래 인재와 학교의 모습을 그려야 한다.

 우리나라 교육계에선 지필시험으로 대표되는 획일적·경쟁적 교육에 예속된 추격형·답습형 학생이 아닌 다양성과 소통으로 길러진 문제창출형 인재를 육성할 수 있도록 창의력과 사고력을 높이는 교육이 이미 시작되었다. 특히 기본 인성 중심의 초등교육과 진학·취업에 몰입하는 고등학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중학교에서 새로운 미래학교의 모습이 등장하고 있다.

 2016년부터 전국의 모든 중학교에서 실시될 자유학기제는 전통적인 기본교과 수업에서 벗어나 융합 교과와 체험 중심으로 수업을 바꾸고 있다. 학생의 꿈과 미래를 추구하는 진로탐색 활동, 선택교육 프로그램, 동아리 활동. 예술·체육 활동을 바탕으로 교육과정을 유연하게 운영하는 것이 자유학기제의 주요 내용이다. 학생·교사·학부모·지역사회가 교육공동체의 구성원으로 교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설계됐다.

 자유학기제를 직접 실시하고 있는 학교 현장에서의 반응은 뜨겁다. 먼저 학생들의 변화가 눈에 띈다. 학생들이 직접 참여해 이끌어가는 수업으로 바뀌면서 열의가 높아지고 교실에 생기가 돌고 있다. 학생 입장에서야 지루한 예전의 일방적인 교과수업보다 몸으로 부대끼며 체험할 수 있으니 반기는 게 당연할 것이다. 학생들의 교육에 대한 만족도도 좋아졌다. 올해 운영된 자유학기제 연구학교를 대상으로 자유학기제 도입 전후의 학교생활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3.58에서 3.71로 높아지는 등 의미 있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교사들도 수업을 위해 예전보다 많은 준비를 해야 하지만 학생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과 자긍심을 느끼고 있는 분위기다. 학부모들도 자녀들이 학교 가는 것을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유학기제를 통해 아이들의 행복한 교육을 기대한다”고 얘기한다. 또 일찌감치 학업을 포기하고 학업 외에 자신의 장점을 확인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던 학생들이 변화된 수업과 진로 탐색을 통해 자존감이 높아졌다. 수업을 어렵고 힘들게 여겼던 학생들이 예전보다 적극적으로 교육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증거가 속속 나타나고 있다.

 외국에서도 자유학기제와 유사한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국민의 90% 이상이 행복감을 느낀다는 덴마크에서는 1980년대 초부터 획일화된 커리큘럼에 대한 개선책으로 ‘애프터 스쿨’ 제도를 운영 중이다. 기초교육이 끝나는 10학년째 1~2년간 학생 스스로 진로 체험 등의 기회를 갖도록 하고 있다. 영국의 ‘갭이어(Gap Year)’, 아일랜드의 ‘전환학기제’ 등은 모두 학생에게 다양한 교육적 활동과 체험활동으로 스스로 자신에 대한 성찰과 재능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자유학기제가 빠르게 정착해 나가고 있지만 앞으로 지난 2년 시범운영한 자유학기제의 성공 가능성과 지속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장 중심의 교육개선 모범사례를 널리 알리고 교사 역량 강화를 위한 수업개선 연수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지역사회가 학교와 함께 일터 체험과 재능 기부를 통한 진로탐색 인프라 구축에 나서야 한다.

 올해 제주를 시작으로 내년부터 자유학기제를 연차적으로 확산해 나갈 계획이다. 자유학기제를 통한 교육적 변화와 성과가 우리 학교 현장에 긍정적으로 스며들 수 있도록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학교는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고 체험하는 행복한 곳이 돼야 한다. 교사는 수업 혁신과 평가권을 발휘해 교직의 ‘초심’으로 돌아가 수업을 이끌어야 한다. 부모는 다양한 자녀의 꿈을 이해하고 학교와 교사를 믿어야 한다. 자유학기제를 통해 이 같은 미래교육이 우리에게 곧 다가오길 기대한다.

김동일 서울대 교수·교육학 BK21Plus 미래교육디자인 연구사업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