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공단 현대·기아차 협력업체 르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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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 현대·기아자동차에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업체의 근로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공장 안에는 현대·기아차의 부분 파업 중 납품하지 못한 부품들이 쌓여있다. 경주=조문규 기자

9일 경북 경주의 공업단지 내 한 업체.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에 부품을 납품하는 회사다. 이날 생산라인이 모처럼 활기차게 돌아갔다. 현대차 노사가 전날 임금단체협상에 잠정 합의했기 때문이다. 현대차 노조가 11일간 부분파업을 하는 동안 이 업체도 라인을 부분 가동하고,근로자 교육이나 공장 청소 등으로 시간을 때웠다. 회사 관계자는 "일단 한숨 돌렸다. 12일부터 정상 조업에 들어간다. 그래도 기아차가 아직 파업중이라 조마조마하다"고 말했다.

경주에 있는 크고 작은 13개 공단의 893개 업체 중 317개 업체(35.4%)가 자동차 부품을 만든다. 대부분 현대.기아차의 협력업체들이다. 이들 업체 근로자들은 원청업체가 파업을 하면 그 후유증은 협력업체가 더 크다고 입을 모은다.

A업체 김모(46)씨는 "잔업이나 특근수당이 월급의 40%를 차지한다. 현대.기아차 파업으로 수당을 많이 못받을 것 같다. 현대.기아차 노동자들은 나중에 성과급 등으로 손실을 어느 정도 메울 수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우린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는다"고 말했다. 같은 업체 박모(44)씨는 "당장 생활비가 쪼들릴 것 같아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에게 학원을 그만두라고 했다"고 말했다.

1차업체(현대.기아차에 직접 납품하는 업체)에 납품하는 2차업체의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하다. 2차업체 근로자 김모씨는 "이게 당분간 마지막 담배"라며 담배 한 대를 피웠다. 보너스가 없는 달 김씨가 받은 월급은 120만원 정도. 이 달은 파업의 영향으로 추석 보너스와 50만원 정도의 수당이 불확실한 실정이다. 김씨는 "요즘 70만원 갖고 네 식구가 어떻게 사냐. 담뱃값이라도 아껴야겠다"고 말했다.

3차 업체는 죽을 맛이다. 프레스 가공을 하는 한 3차업체의 근로자는 7명. 사장과 사장의 어머니와 동생,그리고 4명의 종업원이다. 이 회사 사장은 "우리 식구를 뺀 네 명의 월급을 주기 위해 사채라도 빌려야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협력업체 근로자들의 또 다른 걱정은 현대.기아차 측이 파업으로 입은 손실을 메우기 위해 협력업체에게 부담을 전가할까 하는 것이다. 이른바 원가절감을 빌미로 납품단가를 깎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원청업체가 '납품단가를 낮춰라'고 직접 말한 적은 없지만 '생산원가를 얼마나 줄일 수 있냐'고 에둘러 물으면 협력업체는 알아서 줄일 수 밖에 없다"고 했다.

현대차 노조는 9일 파업을 풀었으나 기아차 노조의 파업은 계속되고 있다. 기아차 노사는 9일 소하리 공장에서 14차 임금교섭을 벌였으나 결렬됐다.

임금 인상안에 대한 노.사간 입장차이는 좁혔지만 노조가 내놓은 9개의 특별요구안이 마지막 쟁점이 되고 있다. 특별요구안은 구속 중인 해고자 복직, 고소.고발에 따른 벌금 회사 대납, 고정잔업 확보를 위한 임금체계 개선 등이다. 사 측은 현실적으로 이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12일에도 부분 파업이 이어질 경우 기아차의 생산차질은 2만9671대, 매출손실은 4273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400여개의 1차 부품 납품업체를 포함해 6000여개에 이르는 협력업체들은 이보다 조금 적은 4068억원의 매출손실을 입을 전망이다.

경주=이철재 기자<seajay@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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