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소금밭 근처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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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소금밭 근처에서 마종하(1943~ )

하얗게 밀리는 바다.

가장 외로운 이는, 소금밭처럼

속을 하얗게 떨어내 보인다.

홀며느리를 염전에 보내놓고

할머니께선, 떠도는 나와 함께

푸시시하게 '솔'이나 피우신다.

어떻게 사시느냐고 여쭈었더니

바다처럼, 그냥 산다고 웃으신다.

하얗게 마르는 바다.

바다가 떨어내는 눈물빛 사리들.

소금처럼 사시는군요.

내가 연기를 뱉으며 웃으니까,

며느리의 재혼만 걱정하신다.

배꼽이 더 큰 소금밭 며느리가

바다와 뜨겁게 만나는 날

할머니의 머리는 소금보다 희다.


이 짧은 한 편의 시 속에 장편소설 한 권이 들어 있다. 시는 천 마디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가 누구에게 사랑을 고백할 때 한마디 말만 필요하듯이 시도 그렇다. 모든 것을 잃은 가난한 한 사내가 바다를 떠돌다 염전에서 한 할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부터 이 시 속에 있는 소설은 시작된다. 소금밭을 일구던 아들을 잃고 며느리 재혼을 걱정하는 한 할머니의 삶 속에 흐르는 것은 순응과 사랑이다.

정호승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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