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만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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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나는 개나 고양이보다는 역시 돼지가 좋다. 개는 사람을 우러러 쳐다본다. 고양이는 거꾸로 사람을 내려다보려고 든다. 그러나 돼지는 사람을 저와 평등하게 대해준다. 그래서 좋다-.
「처칠」전수상이 한 말이란다. 지난 세?에 나온 회고록에서 그의 손녀가 그렇게 쓰고 있었으니까 틀림은 없겠다. 개나 고양이면 서양사람들이 흔히 하듯 「처칠」이 정말 돼지를 자기 이부자리에 재울 정도로 귀여워했는지는 써 있지 않아 확실친 않다. 그러나 돼지들로선 이런 말만으로도 고맙다. 그동안 말을 안해서 그렇지 정말 왜들 이러느냐고 하고 싶을 정도로 구박이 심했던게 이쪽 사람들의 돼지취급이었기 때문이다.
하긴 동양이라고 돼지들의 팔자가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지금도 흔히 『저런 돼지같은 녀석 같으니라구!』라든가 『이게 돼지우리지 사람 사는덴가』따위로 욕심이 많다든가, 지저분하다는 것을 가리키는 욕으로 쓰여지는게 돼지다. 그러나 돼지들이 사하고 악한 것을 대명하는 일이란 없다.
서양돼지들은 좀 다르다. 그렇게 순진하고 무구한 얼굴과는 달리 어딘가 간사한 존재로 쳐진다.
「제국주의주구」식으로 중국이면 개가먹을 욕도 서양에선 돼지가 먹는다.
파시스트 스와인 따위로 나쁘다는 것을 강조하는 덤으로 으례 내세워지는 스와인, 돼지다. 『모든 동물은 다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딴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며 영국소설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 횡포스럽고 밉살스런 거드름을 피우는 것도 돼지였었다. 우리가 「쇠고집」이라고 하는 것도 서양사람들은「피그 해디드」라고 돼지가 뒤집어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돼지로서 진 죄란 밥상에 올라 사람에게 먹힌 것밖엔 없다. 그것도 가끔씩도 아니고 매일, 사시사철 아침밥상부터다. 꼴불견은 그걸로 그치지 않는다.
돼지고기를 안먹는 사람을 보곤 『저거 유대인일 거라구』따위로 수군거린다. 수군거릴 정도가 아니라 중세스페인 같은데선 종교재판에 거는 등 모진 박해까지를 했다. 요새도 가는 길을 돼지가 가로지르면 재수없는 징조라고 외출의 발길을 멈춘다.
돼지꿈 꾸면 길조라는 동양관 거꾸로다.
탐욕스럽고 간사하고, 편견많고, 고집장이고, 변덕스럽고…. 아니, 대관절 누가 누구를 두고 해야할 얘기냐. 정말 『이 스와인들아』라고 할게 사실은 사람이기보다는 돼지쪽이 아닌지. 어떻게 돼지해에 마침 그런 얘기가 나온 건 우연일테지만 「처칠」이 돼지가 좋다한건 개의 비굴이나 고양이의 교만이 어딘지 사람에 닮은데가 있고 그게 싫어서 그랬던게 아닌가 여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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