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자유당과 내각(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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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자유당 창당작업은 개헌안제안 직후인 12월초 둘로 쪼개졌다. 표면상은 개헌문제였지만 내막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원내파는 12월2일 회의에서 두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신당 준비위원회의 원내중심 개편」「출신 국회의원 중심의 지방조직 원칙확인」이 그것이다. 원내측 이갑성·김동성·엄상섭등 대표단은 이박사를 찾아가 회의경과를 보고했다. 그랬지만 이박사는 원내우위에 아무런 언질을 주지 않았다.

<합동창당 끝내 실패>
자유당조직에 있어 5개 사회단체가 합동한 원외파는 전 지역에 걸쳐 이미 조직을 갖고 있는 반면 원내파는 의원들의 사조직뿐이었다. 지방에서 대의원대회를 거쳐 중앙대의원을 선출한다면 원외파 우세는 당연한 추세였다.
결국 원내파는 조직원칙 개헌등 문제를 이유로 11월중순에 구성했던 「원내외 합동신당준비기구」에서 이탈했다.
원외파를 대표한 이활 양우정등 대표단은 12월21일 원내파의 오강영 엄상섭 정헌주 김정실등과 회의를 갖고 재합류협상을 했다. 원의측은 원내파가 이승만당수 추대만 수락한다면 대통령직선제 개헌안을 당책으로 굳이 고집하지 않겠다고 했다. 창당대회 대의원선거에서도 원내와 원외측의 균형을 취하는 문제도 양보할 뜻을 비쳤다.
자유당의 합동교섭에서 개헌안이 문제되자 대통령도 21일 국회에 나와 연설했다. 『정부가 내놓은 것은 공식으로는 헌법개정안이지만 그 내용은 제헌당시 작정해 놓고 시기관계로 유보했던 것을 작정하는 것이다. 만일 국회에서 이것을 반대한다면 국회의원이 자기권리를 놓치기 싫어서 반대한다는 말이 나올터이니 그런 말이 밖에 나지 않도록 사소한 관계를 떠나나 원칙밑에서 통과시켜주기 바란다.』
개헌안에 대한 대통령의 해석은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제헌국회에선「8·15전 정부수립」원칙에 따라 간접선거가 불가피했지만 대통령중심제 헌법에서 대통령의 직접선거는 원칙이기도 했다.
그러나 합동교섭은 끝내 실패하고 12월23일 두개의 창당대회가 별도로 소집됐다. 대통령의 측근들은 개헌안 설득을 위해서도 최소한 중립에 서서 합동을 주선하도록 희망했다. 그러나 이박사는 그런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원외파를 정통 자유당으로 인정하고 격려사를 이 대회에만 보냈다.

<개헌 찬성 19표뿐>
원외파 창당대회는 만장일치로 당수에 이승만, 부당수에 이범석을 선출했다. 원내파는 원외파대회가 끝난 하오에 별도대회를 열었다. 당수인 대표의장은 논란끝에 선출을 보류하고부의장에 이갑성·김동성·이승환을 선출했다. 다음날엔 중앙상무위원회를 구성, 위원장 오위영, 부위원장 이재학·민영수를 뽑아 체제를 갖췄다. 원외자유당은 원내확보에 나섰고 원내는 여기에 반발했다.

<당명이 같다는 것 외에 둘 사이에는 아무런 공통성도 발견치 못했다. 그들은 노동자·농민의 계급적이익을 추구한다니 그에 알맞은 당명이 있을 것이다>원내자유당대변인 정헌주의 성명이 두 자유당의 격렬안 대립과 경쟁을 말해주고 있었다.
국회는 개헌안을 1월17일 본회의에 올렸다. 토론에선 찬성발언없는 반대연설 일색이었다. △이번 개헌안은 국회를 약화시키려는 의도에 불과하며 국민이 용서치 않을 것이다. 현실을 역행하는 대통령의 독단을 용인할 수 없다. -민국당 서범석 △전 국민이 원하는 것은 내각책임제 개헌이다 -무소속 곽상훈 △시·읍·면장도 직접선거를 않으면서 껑충 뛰어 대통령직선은 언어도단이다 -민우회 서이환 △전쟁수행·통일·부흥이란 당면한 3대 긴급과제와 개헌은 관계가 없다. 군권과 경찰권을 쥐고있는 대통령이 직접선거에 나타난다면 어떤 사태가 야기될 것인가 -자유당 김정실.

<대통령측근들 긴장>
토론이 끝나자 낭패를 느낀 이진수의원등이 개헌원칙은 옳다. 다만 시기가 이른듯하니 표결은 보류하자고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표결 결과는 찬성19, 반대1백43, 기권1로 압도적 다수표의 부결이었다.
이대통령은 국회에 대해선 더 할말은 없다고 했다. 『민주제도에서 대통령이 아무리 원한다해도 국회에서 부결한다면 이것을 인정할 것이다. 그러므로 더 할말은 없으나 일반 민중이 이런 일이 개인에 관한 것이 아니라 원칙대로 정해져야 할 것이므로 국회의원이나 또 민중이 절실히 알아서 교정되어야 할 줄로 믿는 바이다.』
이박사의 담화는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당장의 문제는 아닌듯 했다. 국회는 직선제 부결의 여세를 몰고 내각책임제와 새로운 대통령후보 탐색이란 막후정치로 어수선했다. 대통령도 얼마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러던 대통령이 2월6일 정례기자회견에서 드디어 결심을 표시했다.
국회는 오는 6월에 대통령선거를 예정하고 있고 2∼3인의 입후보자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재선을 위해 출마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이박사는 『직선제 개헌안은 민주국가의 국민이 권리를 찾자는 전 민족의 뜻에 의한 제안이었던 만큼 반드시 앞으로 그렇게 될 것이다』라고 단언했다.
헌법을 고치지 않고 무슨 방법으로 직선을 하는가고 물었을때도 답변은 간결했다. 『국민은 직선제를 원한다. 국회의원이라는 것은 백성이 뽑은 심부름꾼에 불과하다. 하인이 주인의 권리를 빼앗으면 다 일어나서 그러지 못하게 해야하는 것이다.』
이때도 정가에선 대통령의 복안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다. 그랬지만 대통령의 측근들은 앞으로 펼쳐질 사태에 긴장해 있었다.
대통령은 개헌이 부결되었을 때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이 사람들 모두 나한테 와서는 직선제개헌이 원칙이라 그래놓고 표를 찍을 때는 딴 짓들이야. 일반민중이 중심이 되면 설 자리가 없어지는 정파는 아무 의미가 없어…. 이번 기회에 파당행동은 버릇을 고쳐 놓아야 해.』
대통령의 측근들, 원외 자유당간부들, 그리고 소수의 각료들에게 대통령은 이렇게 결심을 털어놨다. 그리고 며칠뒤 바로 행동에 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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