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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대통령 형 비자금 처분"…위조수표로 사기친 일당 검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수백억대 위조수표를 정치권 비자금이라 속여 유통을 시도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을 처리한다며 자기앞수표를 위조해 피해자에게 유통하려 한 혐의(위조유가증권행사ㆍ사기)로 양모(67)씨 등 3명을 구속하고, 박모(68)씨 등 일당 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3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양씨는 지난 12일 서울 용산구의 한 다방에서 피해자 A씨를 만났다. 양씨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의 비자금 40조원을 관리하고 있는데 이중 1조원을 액면가의 1%인 100억 원에 우선 거래하자”고 제안했다. 양씨는 1000만원 상당의 위조 지폐 한장을 A씨에게 샘플로 제공했다.

양씨는 17일 송파구의 한 일식집에서 일당인 이모(60)씨 등과 함께 A씨를 다시 만났다. 위조수표 총책인 김모(47)씨로부터 받은 100만 원권 위조수표 1700장을 든 채였다. 양씨는 A씨에게 “우선 17억원부터 거래하면 2시간 안에 총 1조원을 가지고 오겠다”고 제안했다. 경찰관계자는 “양씨가 A씨에게 제시한 위조수표는 무궁화가 음영처리 돼 있고 일련번호도 모두 다르게 위조해 육안으로 보면 위조여부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정밀하게 위조됐다”고 말했다. 양씨 등 일당들은 자신을 신문사 사장이나 국장 등으로 소개해 피해자를 안심시키려 했다.

하지만 양씨의 범행은 성사되지 않았다. 앞서 양씨가 준 위조수표를 수상히 여긴 A씨가 미리 경찰에 신고를 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양씨 등 일당은 A씨가 부자인 줄 알고 접근했지만, A씨는 무직으로 돈이 없는 무일푼이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들 일당이 유통한 위조수표 등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여죄를 추궁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전직 대통령이나 측근 실세의 비자금이라고 하면 유혹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며 “연말연시에 돈이 풀리는 분위기를 노려 관련 범죄가 늘어나는 만큼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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