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노조시대] <제2부> 3. 경영권 침해인가 참여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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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의 경영참여 요구가 거세다. 경영권에 대한 노조의 직접적인 참여는 '기업의 주인은 과연 누구인가'라는 물음으로 이어진다. 기업경영의 중요한 의사결정은 자본을 댄 사람이 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원칙이다.

종업원 지주제를 통해 근로자의 경영참여를 강화하자는 발상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수익성이나 경쟁력 강화보다는 고용안정과 임금에 더 비중을 두는 노조가 경영에 참여할 경우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낙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경영참여를 법이나 제도로 정하기보다는 기업별로 사정에 맞게 자발적으로 정하도록 하자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은행의 인수.합병(M&A)도 노조의 동의를 얻어 하랍니다. 노조가 무슨 최고경영자(CEO)입니까?"(모 시중은행 임원)

"외국 경쟁사들이 앞다퉈 중국 진출을 강화하고 있는데도 노조는 해외공장 증설을 노사합의로 정하자고 합니다. 글로벌 기업을 포기하라는 얘기나 다름없지요."(현대자동차 임원)

올해 단체협상에 앞서 노조의 요구사항을 전달받은 경영진들은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노조가 임금이나 복지의 수준을 넘어 '경영적 판단에 대한 참여'를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M&A.분사.아웃소싱 등은 90일 전에 노조에 통보해 합의를 얻고 ▶노조가 추천하는 사외이사.감사 1명씩을 이사회에 포함시키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현대자동차 노조는 ▶해외생산 차종의 국내 역수입을 금지하고 ▶공장을 폐쇄할 때는 해외공장을 먼저 하며 ▶해외생산 부품은 노사합의 없이 국내생산 차량에 사용하지 않을 것을 요구했다.

이외에 민주노총 금속산업연맹 산하 노조에서도 비슷한 요구를 하고 있다. '중요한 경영적 결정은 노사 간에 사전합의를 거쳐 한다'는 내용을 임단협에 포함시키라는 민주노총의 지침에 따른 것이다.

노동계는 이를 "고용불안에 대한 대비책"이라고 설명하지만 "고도의 통치행위에 간여하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하는 기업인도 많다.

경영참여를 요구하는 노조의 명분은 역시 '고용안정'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공장이전 등 고용조건에 결정적인 변수가 되는 문제에 노조가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새 정부는 노동계의 경영참여를 옹호하고 있다. 평화적 노사문화 정착을 위해선 투명경영이 선행돼야 하는데 이는 근로자의 경영참여를 통해 이룰 수 있다는 시각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후보시절부터 이런 의견을 보여왔다.

"노사 간에 대립적이고 통제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파트너십을 지니려면 투명경영을 해야 합니다. 경영참여는 이에 기여하는 것이지요."(청와대 정책참모)

그런데 새 정부는 노조가 참여할 수 있는 경영의 범위에 대해 분명한 선을 긋지 않고 있다. 김대중 정부는 M&A나 구조조정을 기업의 고유권한으로 인정해줬다. 노조는 그 결과에 따라 고용승계 등을 놓고 사측과 협상했을뿐 구조조정의 결정 자체에 직접 개입하지는 못했다.

1998년 이후 금융.기업 구조조정에는 이 원칙이 적용됐지만 새 정부 들어 그 구분이 사라졌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에 따라 노조의 요구 수위는 한층 높아지고 재계의 불안도 커진 것이다.

"전 정부는 경영적 판단과 노조의 참여에 대해 명확한 구분을 해줬습니다. 그러나 새 정부 들어 그런 구분이 없어졌습니다. 이 때문에 노조가 경영참여를 투쟁과제로 꺼낸 것이지요."(모 대학 교수)

이런 상황에서 최대의 관심은 역시 노조의 경영참여가 기업의 경쟁력 강화나 투명경영으로 이어지느냐에 모아진다.

노동계와 새 정부는 긍정적이지만 전문가들은 부정적인 의견이 많다. '노조 이익=기업 이익'이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을 때가 더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경기가 나빠져 기업이 구조조정에 내몰리거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개혁을 하려 할 때 양자의 이익이 충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이때 기업은 시장경쟁에서 밀려날 위험이 크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재계는 또 경영참여와 기업의 투명경영을 연결시키려는 노조의 발상에 불만이 크다. 투명경영이라는 목표에는 동의하지만 수단이 잘못됐다는 주장이다.

"투명경영은 회계감사 제도나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해 풀어야 할 문제입니다. 노조가 끼어든다고 경영이 투명해진다는 보장이 없습니다."(한국경영자총협회 간부)

그래도 노동계는 '강한 노(勞)'가 있어야 노사 간에 세력균형을 이루면서 건전한 파트너십이 형성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57년부터 세계에서 유일하게 노(勞)의 경영참여를 법(경영참가법)으로 보장해온 독일을 참고로 삼고 있다.

하지만 정작 독일에선 사정이 좀 바뀌고 있다고 한다. 한 독일기업 한국지사장은 "독일에서도 경영참가.산별체제 등 낡은 노동제도 탓에 경제효율이 떨어졌다는 반성이 나오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 노동계가 본받으려는 '원조(元祖)'는 오히려 방향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는 얘기다.

*** 중앙일보 특별취재반

김정수 전문기자 (경제연구소), 남윤호 .김기찬.하현옥 기자(이상 정책사회부).강병철 기자(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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