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포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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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근혜 대표께.

하와이 군도에 몰로카이란 섬이 있습니다. 하늘을 꿈꾸는 섬이라 불립니다. 가장 하와이다운 섬이라고도 하지요. 그러나 100여 년 전만 해도 달랐습니다. 불모의 땅이었지요. 그곳엔 나환자촌이 있었습니다. 누구도 도망갈 수 없었습니다. 섬 주변이 온통 암벽입니다. 물살도 아주 셉니다. 죽어야 나가는 섬이었지요. 말 그대로 생지옥이었습니다.

다미안 신부(神父)가 그곳에 갑니다. 33세의 나이였습니다. 누구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자기 발로 간 겁니다. 그러나 아무도 맞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다미안은 사랑을 설파했지요. 돌아온 건 빈정거림이었습니다. 그들은 죽음을 기다리던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 그건 당신처럼 건강한 사람들의 잠꼬대야." 다미안은 그때부터 기도를 드립니다. '함께 있는 것'만으론 함께할 수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고통까지 함께해야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는 기도합니다. "저에게도 저들과 같은 나병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결국 그도 나병에 걸립니다. 끓는 물에 손을 담급니다. 화상을 입습니다. 그 위에 나병이 옮습니다. 그의 나이 49세 때입니다. 그는 눈물의 감사 기도를 합니다.

나병에 걸린 그는 강단에 섭니다. 첫마디가 "형제들이여"였습니다. "나도 여러분과 같은 병에 걸렸습니다. 내가 여러분을 사랑하듯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모두가 울었습니다. 사랑의 진정성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섬 전체가 달라집니다. 서로 사랑합니다. 저주의 섬은 평화의 섬이 됐습니다.

다미안은 끝까지 함께했습니다. 치료를 거부합니다. 결국 죽어서 섬을 떠납니다. 시신은 고향 벨기에로 갔습니다. 그러나 섬 사람들은 그를 보내 달라 애원합니다. 그의 오른팔이 돌아옵니다. 몰로카이 언덕에 묻혔습니다. '나환자의 아버지'란 이름과 함께.

사랑의 힘은 대단합니다. 정치에도 이런 감동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고통을 나누는 정치 말입니다. 우리와 함께하는 정치 말입니다. 박 대표께 묻고 싶습니다. 지금 한나라당은 어떻습니까. 우리와 함께하고 있습니까? 고통을 나누고 있나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한나라당은 야당입니다. 여당은 전리품을 나눕니다. 야당은 아픔을 나눠야지요. 함께 울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한나라당엔 그것이 없습니다.

여당을 보세요. 저들은 세상을 둘로 갈랐습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요. 그리고 못 가진 자의 편을 자임합니다. 저들의 정책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겉모습뿐입니다. 저들이 진정 그들과 함께하나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사랑이 없습니다. 함께하는 게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미안 신부 같아야 합니다. 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게 해야지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끼리 말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그러자면 모두를 사랑해야 합니다. 모두의 고통을 공유해야 합니다. 한쪽 편만 들어선 안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서로 싸우게 하고 있습니다.

뭘 노릴까요. 한나라당을 반대로 모는 거지요. 가진 자의 편으로 말입니다. 정치적 소수로 모는 겁니다. 다수의 미움을 사게 하는 거지요. 한나라당은 이미 그곳에 서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됐을까요. 한나라당도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나라당의 모습을 그려 볼까요? 몰로카이 섬 속의 한나라당 말입니다. 나환자 앞에서 설교하는 신체 건장한 신부의 모습입니다. 좋은 얘기를 할 순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의 얘기는 아닙니다. 우리의 고통을 모르니까요.

박 대표의 문제는 아니지요. 한나라당 전체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더 심각합니다. 그러니 여당이 연정(聯政)을 하자 하는 거 아닐까요. 흔들 수 있다고 본 거지요. 야당답지 못하다고 본 겁니다. 이제라도 야당다운 야당을 만드십시오.

이연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