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년의 길목에서 생각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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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유상숙<여수시봉강동238 4통3반>
한해를 마무리하는 곳에 서서 나에게 짙게 뇌리에 남은 일들을 떠올리며 다음해의 문턱에 들어서면 더욱 강하게 느껴질 소록도의 환자들을 생각해 본다.
나의 동그란 얼굴을 후회한 행복한 비명들이 소록도에서 직접 환자들을 만나게되자 부끄럼이 엄습해 나혼자 얼굴을 붉히게했다.
잘려진 뭉뚱한 팔로 뭔가를 말하려 하는안타까운 절규에 가까운 몸부림들이 가슴을 미어지게 했고 침대에 엎드려 엉엉 울어버리는 아주머니를 보다 나의 눈에도 눈물이 막 나왔다.
이들과 만난 경험들이 83년에는 나에게 뭔가 의미있고 조그만 노력이 많은 이의 얼굴에 건강한 미소를 떠올릴수 있다는 신념과 각오를 갖게했다.
서로 반목과 질시와 타인을 험구하려드는 우리들의 야박하고 찌든 열강들은 이들의 모진 아픔을 참고 신앙을 갖고 참되게 딛고 일어서려는 이들에 비해 축복받은 생활이며 은혜로움이 담뿍 담긴 일상들인지 모른다는 생각과 누군가에게 감사의 염(염)이 한없이 일었다.
이제 졸업하면 직접 환자들을 돌볼 내게는참많은 교훈을 안겨준 소중한 체험이었고 진정한 희생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깨닫게해 다음해에도 그런 생각들이 이어지기를 마음속으로 다짐해본다.
이제 바람이 심하게 불고 한없이 웅크러들게하는 겨울에는 서로가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버리는 인색한 이들의 눈들이 우리의 마음들을 더욱 춥게할 것이다.
웬만한 일에는 따뜻한 웃음을 보낼수 있는 넉넉한 넓은 마음들을 갖고 한번쫌은 소록도의 우리의 할머니·엄마·동생들의 삶을 생각하고 그들도 우리의 정다운 이웃이 언젠가는 될수있도록 마음속으로 우리 모두가 기도해 주었으면 좋겠다.
지금 소록도에는 많은이들이 일그러진 얼굴로 활짝 웃으며 겨울햇살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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