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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이 큰돈 따면 돈 안 주고 잠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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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경기도 안산의 한 오피스텔에 마련된 스포츠토토 사이트 관리 장비. 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 업체 직원인 박모씨는 이곳에서 다른 동료 1명과 24시간 맞교대로 근무한다. [신인섭 기자]

그는 자꾸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밖에서 작은 소리만 들려도 움찔하곤 했다. 경기도 안산의 한 오피스텔. 사설 스포츠 토토 사이트를 관리해온 박모(38)씨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린 유령이나 마찬가지예요. 대포폰·대포통장은 기본이죠. 요즘은 대포 에그(인터넷 공유기)까지 쓰니까 절대 흔적이 남지 않죠. 그래도 이젠 이 짓도 그만둬야 할 것 같아요. 경찰 단속도 심해졌고….”

 박씨는 보름 전 나온 신문 기사의 한 대목을 가리켰다. ‘경찰청은 6개월간 인터넷 도박 특별단속을 벌여 3412명을 검거했다고 11일 밝혔다. 이 가운데 67%(2308명)가 불법으로 스포츠 토토 사이트를 운영하다 적발된 경우로….’

 “저처럼 아직 경찰에 안 잡힌 사설 토토 운영자는 훨씬 더 많을 거예요. 돈이 되니까 몰리는 거죠. 제가 관리하는 토토 사이트는 한 달 전에 개설됐는데 벌써 1억원 정도 수익을 올렸거든요.”

 그가 24시간 생활한다는 오피스텔은 50㎡(약 15평) 규모의 복층 원룸이었다. 가재도구라곤 책상 하나와 컴퓨터 네 대뿐이었다. 두 대는 사이트 운영에 사용하고, 나머지 한 대는 대포 계좌로 실시간 이체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아무것도 없는 이 공간에서 토토 사이트 관리만으로 매일 수백만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했다.

 사설 스포츠 토토 사이트 운영은 ‘사장’과 ‘관리자’의 분업체계로 이뤄진다. 사장은 태국·필리핀 등에 있는 불법 스포츠 토토 조직과 연계해 현지에 서버를 개설한다. IP(인터넷 주소) 추적 등을 피하기 위해서다. 이어 국내에 오피스텔과 컴퓨터를 주고 박씨 같은 ‘관리자’에게 실제 운영을 맡긴다. 포털 사이트 댓글이나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홍보 글은 ‘국내 총책(영업)’이 책임진다. 사이트에 문제가 생기면 오피스텔로 직접 찾아오는 ‘프로그래머’도 있다고 한다.

 -사이트 관리자는 어떤 일을 하죠.

 “단순해요. 사이트 홍보 글을 보고 신입 회원들이 연락을 해오면 대포폰으로 통화를 해 회원가입을 승인해 주는 거죠. 사이트 주소와 돈을 베팅할 수 있는 대포 계좌도 알려주고요.”

 박씨는 “홍보 글을 보고 많을 땐 하루에 수백 명이 문의를 해 온다”며 “사이트 개설 보름 만에 5000여만원의 수익을 올렸고 회원들의 베팅 금액만 약 1억7000만원에 달했다”고 말했다. “회원들이 많은 곳은 한 달에 2억~3억원씩 수익이 납니다.”

 사설 스포츠 토토 사이트에 이용자가 몰리는 이유는 높은 베팅 한도 때문이다. 사설 사이트의 경우 1회 베팅 한도는 게임당 100만원 이상이다. 언뜻 보면 큰돈을 만질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박씨의 얘기는 달랐다.

 “돈을 딴 회원에게 계좌 이체를 해줄 때도 있긴 해요. 하지만 배당률이 잘못됐다고 핑계를 대면서 베팅한 돈을 돌려주지 않거나, 판돈이 커지면 사이트를 폐쇄한 뒤 돈만 챙겨 사라지는 게 대부분이죠.”

 최근엔 중·고생 이용자도 늘었다고 한다. “회원들과 통화를 해보면 목소리가 앳된 경우도 많아요. 낮 시간에 1만원, 5000원씩 베팅하는 회원들은 학교에서 스마트폰으로 스포츠 토토를 하는 학생들이라고 보면 됩니다.” 박씨는 조만간 경찰에 자수할 뜻을 밝히면서 힘주어 말했다.

 “사설 스포츠 토토로 큰돈을 거머쥘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면 안 됩니다. 이 바닥은 A~Z까지 모두 사기거든요.”

글=채승기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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