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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증오 안 돼" 성숙한 호주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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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16일 호주 시드니에서 무슬림 여성들이 인질극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범인이 이슬람 극단주의 추종자로 밝혀지며 무슬림에 대한 경계심은 확산 중이다. 시민들은 SNS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무슬림을 보호하기 위해 ‘#당신과 함께 탈게요’ 캠페인을 벌이며 ‘이슬람 껴안기’에 나섰다. [시드니 AP=뉴시스]

호주 시민들은 이란 난민 출신의 무슬림이 저지른 도심 인질극으로 충격에 빠졌지만 성숙한 시민의식까지 잃진 않았다. 나라 전체가 무슬림 테러에 대한 경계 모드에 접어들긴 했지만 이번 일이 자칫 이슬람에 대한 증오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믿음의 발로다.

 인질극이 발생한 지난 15일부터 트위터·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당신과 함께 탈게요’(#illridewithyou·그림)라는 해시태그(hashtag·특정 키워드를 공유한다는 표시)를 붙이며 ‘반(反)이슬람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글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16일 현재 트위터에서 이 해시태그가 달린 글이 25만 건을 넘어섰다.

 ‘#당신과 함께 탈게요’ 열풍은 호주 브리즈번에 사는 네티즌 레이철 제이컵스가 15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시작됐다. 제이컵스는 이번 인질극이 발생한 후 탄 기차에서 한 무슬림 여성을 만났다. 옆자리에 앉은 이 여성은 주위 시선을 의식한 듯 자신의 머리에 두르고 있던 히잡을 조용히 벗었다. 제이컵스는 기차에서 내린 이 여성에게 달려가 “히잡을 다시 쓰세요. 제가 당신과 함께 걸을게요”라고 말했다. 이 말에 그 여성은 울음을 터트렸고 제이컵스와 따뜻하게 포옹한 뒤 혼자 걸어갔다고 한다. 평범한 무슬림이 공공장소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얼마나 두려워하고 압박감을 느끼고 있는지 보여 주는 일화다.

 이 사연을 접한 또 다른 네티즌 테사 쿰은 “종교적인 복장으로 마틴플레이스(인질극이 발생한 장소)로 가는 373번 버스를 타시는 불안한 분들, 제가 같이 타드릴게요. 버스 타는 시간을 알려주세요”라는 트윗을 올렸다. 곧 ‘#당신과 함께 탈게요’라는 해시태그는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트위터에는 관련 게시물이 2시간 만에 4만 건, 4시간 뒤에는 15만 건이 올라왔다고 영국 BBC는 전했다. ‘#당신과 함께 걸을게요’(#illwalkwithyou)라는 해시태그도 덩달아 인기다. 쿰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무력한 방관자가 아니다”며 “‘#당신과 함께 탈게요’ 운동은 작은 움직임이지만 결국 큰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호주에선 최근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위협이 커지면서 ‘이슬라모포비아(Islamophobia·이슬람 혐오증)’도 따라 확산되고 있다. 별다른 이유 없이 무슬림 여성에게 욕설을 퍼붓거나 무슬림이 운영하는 상점에 불을 지르는 경우도 있다. 호주 무슬림 44개 단체는 15일 “무고한 사람의 목숨을 노리거나 공포심을 주입하려는 행동들은 비난한다”며 “이슬람이라는 종교는 물론 호주 무슬림들이 이로 인해 업신여김을 당하게 된다”며 이슬람 극단주의와 선을 그었다.

하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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