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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중앙시조대상] 죽음 생각할 때, 삶의 문 열어준 구원의 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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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제33회 중앙시조대상 수상작에 박권숙(52) 시인의 ‘쇠뜨기’가, 중앙시조신인상 수상작에 조성문(49) 시인의 ‘점등 무렵’이 각각 선정됐다. 두 상의 예심은 박희정·서정택 시인이, 본심은 이승은·이지엽 시인과 평론가 유성호씨가 맡았다. 제25회 중앙신인문학상 시조부문(중앙시조백일장 연말 장원)은 전향란(56)씨의 ‘드럼 세탁기’가 당선작으로 뽑혔다. 시상식은 19일 오후 6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강당에서 열린다. 02-2133-1732, 1733.

중앙시조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박권숙 시인. 수상작 ‘쇠뜨기’는 척박한 환경에 굴하지 않는 잡초의 억센 삶에 빗대 지병인 신부전증을 이겨내고자 하는 희망을 그린 작품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중앙시조대상] 박권숙

시조시인 박권숙(52)씨를 아는 이들에게 당선작 ‘쇠뜨기’는 의미심장하다.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는 잡초 쇠뜨기의 모습에서 박씨의 얼굴이 읽혀서다.

 박씨의 실제 삶이 쇠뜨기를 연상시킨다. 그는 1987년 신부전증 판정을 받았다. 스물다섯, 꽃다운 나이일 때다. 병마는 한시도 호락호락한 적이 없었다. 박씨는 87년과 99년 각각 아버지·여동생에게서 신장을 하나씩 이식받았다. 99년 이후 혈액 투석은 더 이상 받지 않지만 각종 합병증에 시달린다. 시력이 나빠져 책을 읽을 수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문장에 민감해야 하는 시인에게는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10일 박씨는 “죽음이 구원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통이 심할 때 시조를 만났다”고 했다. 91년 초여름 박씨의 어머니가 본지의 시조백일장 지면을 보여준 게 계기다. 같은 해 8월 장원에 덜컥 당선된 박씨는 연말 장원마저 거머쥐어 시조시인으로 등단했다. 93년 중앙시조신인상까지 받았다.

 소감을 묻자 박씨는 “시조 분야의 노벨상을 받은 거죠. 내 생애의 가장 큰 소망이 이뤄진 날”이라며 “시조는 내게 구원의 빛이자 제2의 인생길을 열어 준 문”이라고 답했다. ‘쇠뜨기’에 대해서는 “쓸 때는 잘 몰랐는데 당선 소식을 듣고 다시 읽어 보니 모든 생명의 근원은 결국 어떻게든 살아 남겠다는 비장한 생존의지라는 생각이 녹아 있었다”고 돌아봤다.

 박씨는 “몇 해 전부터 투병일지 같은 경향에서 벗어나 생명과 희망에 대해 쓰려고 한다”고 말했다. 박씨에게 ‘쇠뜨기’는 희망의 다른 이름이다.

신준봉 기자

내공 아직 약하지만 … 더 간곡하게 이 길 걸을 것
[중앙시조신인상] 조성문

먼저 머리 숙여 심사위원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수능이 끝난 아이들과 현장 체험하러 아라뱃길로 나서는 날입니다. 생각보다 춥기에 서로들 걷지 않겠노라고 투정을 부립니다. 그래도 같이 걷자고 부추겨봅니다. 어디 입시 지옥 같은 곳에서 이 바람을 쐬겠니? 어디 저 청둥오리의 뜨거운 날갯짓을 알 수 있겠니?

 선뜻 그네들에게 시조 한 줄 제대로 가르치질 못했으니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하지만 몇몇 너스레로 들려도 주니까 금방 좋아합니다. 저기 풍차가 있는 곳에서 좀 쉬자고 말하는 순간입니다. 물길 먼 곳에서부터 기쁜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근자에 비틀거린 행보를 반성하게 합니다. 내 한 몸 추스르지 못했는데 추상같은 엄명을 받습니다.

아직은 내재율을 향한 내공의 힘은 약합니다. 마음을 다잡아 더 젊게 느끼고, 행동하고, 젊은 감각으로 민족시를 쓰고 싶습니다. 존경하는 문단의 여러 스승님, 빛나는 선후배님들, 가족친지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영예로운 상을 내려주신 중앙일보사와 심사위원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더욱 간곡하게 이 길을 걷겠습니다.

◆조성문=1965년 전남 함평 출생. 2006년 조선일보로 등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신진예술가 지원금. ‘21세기시조’ 동인.

마음의 상처 치유하는 시조, 더 연구하라는 격려
[중앙신인문학상] 전향란

서울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이 저를 너무 놀라게 했습니다.

 “당선 되셨습니다.” “…….”

 제게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습니다. 시조 쓰기가 그저 즐거웠습니다. 한편의 작품을 만날 때마다 성취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고 우울한 때를 시조를 쓰며 극복하기도 했습니다. 시조 쓰기의 정서적 심리적 치유 가능성을 연구하던 차에 큰 상을 받게 됐습니다. 그 꿈을 키워보라는 격려로 알고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의 가능성을 믿고 저를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 정말 고맙습니다. 강호시조문학회 회원들과 제게 희망을 주시고 젊은 감각을 일깨워 주신 조해진 교수님 고맙습니다. 가족과 친구, 나를 아는 모든 분들께도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오늘이 제 인생 최고의 날입니다.

◆전향란=1958년 서울 출생. 강릉 강호시조문학회 회원. 가톨릭관동대 국문과 석사과정. 시조를 통한 심리 치료 연구 중.

중앙시조대상·신인상 심사평

중앙시조대상에는 모두 열세 분의 시인이 본심에 부쳐졌다. 시조단의 중진들인지라, 작품적 완결성과 미적 품격에서 어느 해보다 미더운 성취를 보여주었다고 심사위원들은 판단하였다. 그 가운데 염창권·박권숙 시인을 주목하고 집중적으로 그들의 작품을 읽어나갔다.

염창권 시인의 단단한 심미적 표상과 박권숙 시인의 속 깊은 진정성의 시세계에 후한 점수가 매겨졌는데, 결국 심사위원들은 작품들의 균질성과 완성도를 높게 사 박권숙 시인의 ‘쇠뜨기’를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이 시편은 주변적인 존재인 쇠뜨기의 삶이, 지속적으로 일어서고 길을 가려는 존재론적 에너지를 품고 있음을 실감 있게 묘사해 낸 점이 높이 평가되었다. 박권숙 특유의 호소력과 안정된 이미지가 잘 살아 있는 작품이었다. 신인상은 조성문 시인의 ‘점등 무렵’을 오랜 토의 끝에 선정했다. 도시에서 하나둘씩 켜지는 등의 이미지를 배경으로 주변화된 존재들을 형상화한 가편이었다. 따스한 불빛을 응시하는 시인의 감각과 사유가 긍정적으로 평가되었다. 수상자들의 새로운 정진을 부탁드린다.

◆심사위원=이승은·이지엽·유성호(대표집필 유성호)

신인문학상 시조부문 심사평

전향란의 ‘드럼 세탁기’를 당선작으로 올린다. 평범한 소재인 세탁기를 통해 한 생의 압축 파일을 읽어낸 시선과 통찰이 돋보인 작품이다. 대상의 속성을 파헤치며 자아의 성찰을 유도해나간 역량이 미덥고, ‘거품을 물고 가는 한 생이 치열하다’ 같은 표현도 시를 끌어당기는 자장이 깊다. 찌든 일상에 매몰된 내면 세계를 ‘치대고 씻어 내리고 두드리며’ 정화시켜 가는 전개 과정 또한 들뜨지 않은 밀도를 보여준다.

신인의 경우 과도한 형식적 실험에 매달리기보다는 기본형에 충실히 활착을 해야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김태경·용창선·류미야·유순덕·이창규씨의 작품들이 끝까지 선자들의 손을 떠나지 않았음을 밝히며 매운 정진을 바란다. 아울러 당선자에겐 축하와 격려의 인사를 전한다.

◆심사위원=오승철·권갑하·박명숙·이달균(대표집필 박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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