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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노재현 칼럼

모두가 약자뿐인 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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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노재현
노재현 기자 중앙일보 부장
노재현
중앙북스 대표

비슷한 나이의 지인들과 얼마 전 저녁식사를 했다. 아들을 군에 보낸 이가 있어 자연스레 군대 얘기로 화제가 옮겨갔다. “요즘 군대 이상하더라” “당나라 군대도 이렇지는 않았을 거다”는 개탄이 잇따랐다. 아들이 복무 중인 최전방 부대에서 삼겹살 구이로 회식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장병·부모가 공유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방에 올렸단다. 이걸 보고 한 사병의 어머니가 글을 올렸다. “우리 애가 잘 안 보이니 얼굴이 다 나오는 사진을 띄워주세요.” 중대장이 바로 답변을 달았다. “즉각 조치하겠습니다.”

 이 정도야 좋게 이해할 수 있다. 최근 아들 면회를 다녀왔다는 지인은 “요새 군대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마편’”이라고 했다. ‘아편’을 잘못 들었나 했더니 아니었다. ‘마음편지’의 줄임말이란다. 한 달에 한 번 중대장·연대장 등 상관에게 보낼 수 있는 비밀편지라니까 일종의 소원수리 제도인 듯하다. 선임병을 중심으로 몇 명이 부대 밖에서 몰래 통닭구이를 사들여와 자기들끼리 먹었단다. 치킨 파티에 끼지 못한 동료 누군가가 ‘마편’에 비리(?)를 낱낱이 적어 보냈다. 조사단이 들이닥쳤고, 닭구이를 즐긴 전원은 휴가가 5일씩 줄어드는 징계를 받았다. 다른 지인은 “조카가 다른 부대에서 문제를 일으킨 뒤 전입 온 관심사병(부적응 사병)에게 ‘너 또 사고 치면 죽는다’라고 엄포 놓았다가 그 사병이 집으로 전화해 ‘엄마, 선임이 나 죽인다고 했어’라고 이르는 바람에 영창에 갈 뻔했다”고 말했다. 휴가 일수가 주는 선에서 간신히 수습됐다는 것이다.

 신문에서나 가끔 다루는 특수한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듣고 보니 요즘 군에 만연한 풍경인 것 같다. 선임병에게 맞아 비참하게 숨진 사건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니, 자식을 군에 보낸 엄마들의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을 짐작 못하는 건 아니다. 문제는 군대는 어디까지나 군대여야 한다는 점이다. 새로운 기강이 자리 잡기까지의 과도기적 혼란, 진통이라고 봐주어야 하는 걸까. 규율과 상명하복(上命下服)은 군 전투력의 필수 요건인데 이것마저 망가뜨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군대도 크게 보면 사회의 축소판이다. 우리는 강자가 판치는 세상, 멋대로 전횡하고 법과 제도까지 주무르는 세상을 오랫동안 겪어왔다. 민주화가 진행되고 권리의식이 제자리를 찾으면서 군대든 일반사회든 도를 벗어난 행위들이 속속 응징을 당하기 시작했다. SNS를 중심으로 ‘갑(甲)질’에 대한 분노가 공감의 회오리를 불러일으키는 일이 일상화됐다. 때로는 세월호 유족과 대리기사처럼 회오리가 또다른 회오리와 충돌하기도 한다. 을(乙)끼리의 부딪침이다. 드라마 ‘미생’을 보는 수많은 시청자 대부분이 어떤 자리에선 갑이고 다른 자리에선 을이나 병(丙)이 되는, 다양한 사회적 관계망 속의 한 사람일 텐데, TV 앞에서만큼은 모두 을의 심정으로 공감하며 시청한다. 다들 을이고 피해자이니까 조현아 전 부사장 같은 ‘수퍼 갑’이 표적으로 떠오르면 그야말로 국민적인 분노가 퍼부어진다.

 나는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을 ‘정치민주화·경제민주화와는 또 다른, 혹은 대응하는 개념으로 사회민주화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징후로 파악한 김호기 연세대 교수의 의견(중앙Sunday 12월 14~15일자)에 동의한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는 사태의 전개가 ‘을들의 공허한 축제’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모두가 저마다 을이자 피해자라고 자임하는 사회적 풍토에 던져진 맞춤한 먹잇감 같다는 느낌 말이다. ‘미생’에 대한 열광과 찬사에서도 비슷한 인상을 받는데, 왠지 집단적 자기위안과 대리만족, 나아가 자기기만까지 깃들어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사회 저변에 폭넓게 퍼진 르상티망(ressentiment·약자의 강자에 대한 복수심)이 개혁과 개선의 원동력 역할을 한다면야 더 바랄 게 없다. 그러나 요즘 풍경은 일회적·소모적 발산이라는 측면이 더 두드러져 보인다. 다들 피해자연(然)하니 온통 약자뿐인 세상이다. 내 탓보다 남 탓, 제도 탓, 세상 탓이다. 성취보다는 폄하가, 달리기보다는 발목 잡기가 쉬워서 그런 것일까. 군대 내 가혹행위나 학교 폭력도 가해자가 있으니 피해자도 있는 법인데 내 자식이 가해자일 가능성은 아예 제쳐놓고 생각한다. 당연히 정치인들도 이런 눈치를 보며 비위 맞추기에 여념이 없다. 정윤회·조현아씨가 권력 없고 돈 없어 억울한 ‘약자’들의 관심을 듬뿍 받는 사이에 공무원연금 개혁 같은 진짜 중요한 이슈는 실종된 거나 마찬가지 꼴이 돼버렸다. 나도 약자고 너도 피해자라는 퇴영적인 감정소비 세태가 과연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지 걱정이다. 이 와중에 진짜 갑들은 소리 없이 주판알 튕기며 웃고 있을 텐데 말이다.

노재현 중앙북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