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나라 들쑤셔" "획기적 발상의 전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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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中) 등 의원들이 29일 오후 경남 통영 마리나리조트에서 열린 국회의원 워크숍 입소식에서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통영=연합뉴스]

▶윤호중="연정을 제안한 노 대통령의 순수성을 의심해선 안 된다. 우리당 당원과 지지자 중에 대통령의 제안에 대한 몰이해와 의심과 회의를 가진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대통령의 제안이 힘을 잃어가고 있다."

▶송영길="지역주의 극복이 중요한 과제이지만 당이 지역주의로만 망가졌느냐. 당의 어려움은 정책 실패, 민생경제 실패에서 온 것이다. 대통령의 제안에 대해 당내에서 심도있는 협의가 부족했다. 우리당이 대통령의 사당(私黨)은 아니지 않은가."

열린우리당이 29일 대논쟁의 바다에 빠졌다. 경남 통영 마리나리조트에서 열린 워크숍에서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연정론을 놓고 격론을 벌였다. 마치 봇물이 터진 듯 대통령과 당 지도부를 향한 비판도 거침없었다. "연정론을 그만 접자"는 얘기까지 나왔다.

이제 노 대통령이 불을 지핀 연정론은 기로에 섰다. 열린우리당은 이날 나온 의원들의 의견을 정세균 원내대표를 통해 노 대통령에게 가감 없이 전달하기로 했다. 30일 저녁에는 노 대통령과 당 소속 전체의원 간의 만남도 예정돼 있다. 이 논쟁이 여권 내부의 전열을 정비하는 순기능으로 작용하느냐, 아니면 당.청 갈등을 가속시키는 역기능을 하느냐에 집권 후반기 참여정부의 성패가 달려 있다.

◆ "통합과 단결" 강조한 지도부=문희상 의장은 인사말에서 "한국 정치의 미래는 통합에 있다"며 "무엇이 참여정부에 부족한 2%인지 허심탄회하게 얘기해보자"고 독려했다. 정세균 원내대표는 통영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연고지임을 거론하며 "의원 한 분 한 분이 배라면 지금 우리에겐 145척의 배가 있다"며 단합을 호소했다. 정 대표는 "좀 어렵고 답답한 것도 사실"이라며 "하지만 우리가 가진 것, 버릴 것, 얻을 것, 이룰 것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누면 한층 맑아진 시야로 서울로 향할 수 있다"고 했다.

◆ "대통령이 온 나라 들쑤신다"=연찬회 벽두부터 의원들은 불만을 쏟아냈다. 특히 수도권 소장파와 호남 출신의원들의 비판 강도가 컸다. 송영길(인천계양)의원은 윤호중(구리)의원이 기조발제에서 "대통령의 결단에 대해 당이 뒷받침해주는 것이 정국 주도권을 위해 좋다고 생각한다"고 하자 "연정에 반대하는 사람은 왜 기조발제에 안 넣었느냐"고 불만을 제기했다.

뒤이어 비공개 분임토의에서 나온 의원들의 발언은 위험수위를 넘나들었다.

"한나라당과의 연정은 말도 안 되는 소리"(우원식.노원을), "대통령이 너무 앞서 나간다"(강기정.광주북갑) 등의 비판이 줄을 이었다. 집권 초 청와대 정무비서관을 지낸 문학진(하남)의원은 "당의 진로와 관련한 문제에 대통령이 나서서 툭툭 말을 던지는데 당은 개털이냐"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호남의 한 초선의원은 "목표야 맞지만 대연정론은 지역 민심과 동떨어져 있다"며 "지금 (대통령이)온 나라를 들쑤시고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의 한 재선의원은 "당도 문제"라며 "당이 썩은 물에 이끼 떠오르듯 민생.민심과 동떨어져 있다"고 했다.

당 지도부에 대한 성토도 줄을 이었다. 정덕구(비례대표)의원은 "지금 당과 대통령이 서로를 신뢰 못하고 있다"면서 "140명도 제대로 못 이끄는 당 지도부는 무엇 하는 사람들이냐"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정청래(마포을)의원은 "대통령의 발언 취지에는 공감하나 당 지도부의 후속작업이 아쉽다"고 말했다.

반면 문병호(인천부평갑)의원은 "대통령 아니면 할 수 없는 말 아니냐"면서 "발상의 획기적인 전환인 만큼 한번 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조경태(부산사하을)의원도 "지역주의 해소를 위한 대통령의 뜻에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대통령의 연정론에 동의한다"고 거들었다.

◆ "연정론에 종지부 찍자"=밤 늦게까지 계속된 분임 토의에서 일부 의원은 연정론의 조속한 정리도 요구했다. 특히 2반(반장 김성곤)의 경우 "연정론은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았다"면서 "이른 시일 안에 정리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한 의원은 "지역구도 타파를 위해 필요하다면 선거법 개정 또는 개헌을 생각해 볼 수 있다"면서 "대신 연정은 당론이 아닌 만큼 이른 시일 안에 당 지도부가 대통령과 (연정론을)정리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당정 분리에 대한 불안감도 표출됐다. 한 의원은 "지방선거 결과를 보고 대통령이 열린우리당과 결별한다는 소문이 있다"면서 "당 지도부가 이 문제를 분명히 해달라"고도 했다.

문 의장은 "연정 문제로 대통령과 열 번 이상 만났다"면서 "어제(28일) 전.현직 지도부가 만나 앞으로 대통령이 아닌 사람이 당에서 연정 문제를 자꾸 얘기하지 말고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입법에 주력하자고 했다"고 설명했다. 문 의장은 "당정 분리를 옛날처럼 복원할 가능성은 (대통령)재임 중에는 제로"라며 "대신 당정 일체라는 소리가 나올 수 있도록 당.정.청이 수도 없이 많이 만날 것"이라고 의원들을 다독였다.

통영=박승희.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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