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민이 큰누나를 욕먹게 하고 있다" 박지만 분노, 최씨 사위 정윤회에게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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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언니(박근혜 대통령)는 최태민(1994년 사망)씨에게 속은 죄밖에 없습니다. 최씨는 아버님(박정희 전 대통령)이 돌아가신 후 자신의 축재 행위가 폭로될까봐 계속해 저희 언니를 방패막이로 삼아 왔습니다.”

 90년 박 대통령의 동생 근령씨와 박지만 EG 회장이 노태우 당시 대통령에게 보낸 탄원서의 일부다. 박 회장은 그해 말 한 여성지와의 인터뷰에서 “큰누나를 욕먹게 하고 부모님께도 누를 끼치게 되는 것 같아 그런 탄원서를 보냈다”고 말했다.

 박 회장 주변 인사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박 회장은 애초부터 최씨와 그 주변 사람들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두 번의 대선(2007, 2012년) 등 민감한 정치적 시기마다 최씨 얘기가 거론되는데 불만을 나타냈다고 한다. 최씨가 사망한 이후인 95년 최씨의 딸인 최순실씨와 결혼한 정윤회씨와도 그래서 소원한 관계였다는 게 박 회장 지인들의 얘기다.

 박 대통령 주변에서 두 사람의 역할은 달랐다. 정씨는 ‘박근혜 의원 비서실장’으로 정치인 박근혜를 보좌했다. 98년 15대 국회 보궐선거에서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이 됐을 때 청와대 3인방으로 지목되는 이재만·정호성·안봉근 비서관을 박 대통령 곁에 두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던 정씨지만 “2007년을 끝으로 박 대통령의 곁을 떠나 야인으로 지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박 회장은 이를 믿지 않았던 것 같다.

 근령씨는 최근 한 방송에 나와 박 회장이 정씨를 가리켜 “피보다 진한 물도 있더라”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정씨와 달리 박 회장은 정치인 박근혜의 곁엔 있지 않았다. 말 그대로 가족의 역할만 해왔다. 2004년 서향희씨와 결혼한 뒤 이듬해 태어난 세현군은 박 대통령의 ‘보물 1호’라고 불리지만 박 대통령의 당선 뒤엔 청와대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거리를 두고 있다.

 각자 다른 길을 가며 관계가 없어 보이던 두 사람의 사이가 이목을 끌기 시작한 건 올 3월 시사저널에 ‘정윤회, 박지만 미행’이란 보도가 나오면서다.

 박 회장은 이날도 검찰에서 “미행이 사실”이라고 진술하며 정씨의 주장을 정면으로 뒤집었다. 정씨는 검찰에서 박 회장과의 대질신문을 요구하는 등 서로 각을 세우고 있는 상태다.

 둘의 암투설은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과 10월 군 장성 인사에서 3군 부사령관으로 옮긴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 박 회장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일부 국정원 직원이 좌천당하면서 증폭된 측면이 있다. 상대적으로 정씨와 인연이 깊은 청와대 3인방까지 갈등설에 끼어들면서 둘이 갈등의 진원지로 지목되기에 이르렀다.

 지난 대선 때 박 대통령 캠프에 몸담았던 한 여권 고위 인사는 “조 전 비서관과 3인방은 정부 출범 초만 해도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며 “그러나 각종 인사 검증 과정과 ‘십상시 문건’ 유출 과정에서 틀어졌다”고 말했다.

이가영·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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