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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아 조사실 옆 여자화장실 청소해 달라 한 대한항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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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12일 ‘땅콩 회항’ 논란을 일으킨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서울 공항동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에서 조사를 마치고 대한항공 관계자들의 안내를 받으며 나오고 있다. 왼쪽부터 대한항공 동남아지역본부장 이화석 전무, 조 전 부사장, 한진그룹 모기업인 ㈜한진의 서용원 대표이사. [뉴시스]
김혜미
사회부문 기자

지난 12일 오후 2시쯤 서울 공항동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건물 2층. ‘땅콩 회항’의 주인공 조현아(40) 전 대한항공 부사장 출두를 한 시간여 앞둔 시각이었다.

 “여기 청소하시는 분 계십니까. 여자 화장실 청소 한번 다시 해주시죠.” 조 전 부사장의 동선 파악을 위해 이곳저곳을 살피던 대한항공 관계자가 건물 경비원에게 말했다. 조 전 부사장이 쓸지 모르니 다시 한번 확인을 해달라는 거였다. 그 순간에도 기자와 여직원 서너 명이 이 공용화장실을 이용하고 있었다. 5평 남짓 정도로 작지만 깨끗하게 정돈된 화장실이었다. 청소 아주머니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불려나와 다시 일을 하고 돌아갔다.

 이날 조 전 부사장이 조사를 받는 현장에는 40여 명의 대한항공 관계자가 나와 있었다. 홍보실 직원은 물론 최고위 임원까지 출동했다. 조 전 부사장의 출두 예정시간이 임박하자 이들은 조사가 진행될 항공운전감독관실이 있는 2층으로 향하는 1층 입구부터 막아섰다. “무슨 권한으로 출입을 통제하느냐”며 기자들이 항의했지만 “현장 기자들과 포토라인을 (1층으로) 정했다”며 막무가내였다.

 포토라인은 다수 언론사가 동시에 취재하는 상황에서 촬영 편의를 위해 만든다. ‘여기까지만 취재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취재원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서 만드는 선은 더욱 아니다. 대한항공의 명백한 월권(越權)이다. 지난 10일 중앙지검은 정윤회씨 조사를 이유로 해당 층을 통제했다가 ‘특별대우’가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물며 조사받으러 나온 대한항공 측에서 임의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조사기관인 국토부는 기자들에게 이 같은 협조 요청을 하지 않았다.

 대한항공의 ‘이상 행동’은 이뿐만이 아니다. 조 전 부사장의 조사 전후 인터뷰를 두고 몇 번의 사전 ‘리허설’을 진행했다. “걸어와서 여기 서시고 질문 3개를 받고 인사를 하고 올라갈 겁니다.” 현장에 나와 있는 직원은 기자들의 질문을 미리 확인해 빠르게 사측에 전달했다. 조 전 부사장이 조사를 받고 있던 시각, 피해자인 박창진(41) 당시 사무장은 “대한항공 관계자들이 매일 집에 찾아와 ‘욕을 한 적은 없고 스스로 비행기에서 내렸다’고 진술하도록 요구했다”는 사실을 언론에 폭로했다. 이날 국토부 조사단 총 6명 중 2명은 대한항공 출신이었다.

 이번 사건이 외부에 드러난 8일 이후 대한항공의 대응은 어수룩하기 짝이 없다. 직원에게 허위진술을 강요하는가 하면 국민 정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조 전 부사장 감싸기에만 급급했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상황을 자초한 꼴이다. 대한항공이 시대착오적인 ‘주종(主從)’ 문화에 갇혀 있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김혜미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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