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불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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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호 04면

처음 부엌에 들어가 라면을 끓여본 경험이 국민학교 시절 연탄 아궁이에서였습니다. 냄비에 물을 부어 놓고 한 30분 정도 기다려야 물이 비로소 끓기 시작했죠. 그러다가 몇 년 뒤 아버지가 석유 곤로를 사오셨는데 심지에 불을 붙이고 10분가량 지나면 물이 끓더라고요. 다시 그 몇 년 뒤, 이번엔 어머니가 가스레인지를 설치하셨습니다. 스위치를 돌리고 몇 분 지나지 않아 물이 보글보글. 세월이 한참 흘러 영국 연수 중에 전기 포트를 구입했는데, 와 이건 버튼을 누르고 몇 초 지나지 않아 물이 끓기 시작하더군요.

요즘 즐겨보는 프로그램 중에 tvN의 ‘삼시세끼’가 있습니다. 남자 주인공 2명이 게스트와 함께 하루 종일 일하고, 식사준비하고, 장작 패고, 불 때고, 밥 해먹는 아주 단순한 프로그램입니다. 그런데 그 단순함에 영 채널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주변에 있는 식재료를 직접 다듬고 손질해 먹는 모습이 한참 동안 잊었던 뭔가를 건드리는 느낌입니다.

특히 꺼진 아궁이에 불을 피우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머리에 오래 남았습니다. 연탄불 꺼뜨리면 안 된다고 주의 주시던 옛날 증조 할머니의 모습도 생각났습니다. 그러다가도 불을 꺼뜨리면 재빨리 연탄가게로 달려가 번개탄을 사와서 다시 불을 붙여 놓아야 했죠(불이 붙어 있는 불탄은 비쌌습니다). 그렇게들 살았습니다. 지금은 너무 편해져서 다들 손놓고 있는 걸까요. 사회에 온기가, 불씨가 점점 꺼져가는데.

정형모 문화에디터 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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