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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리 창업자, 스코틀랜드 유학파와 손잡고 위스키 산업 개척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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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호 15면

토리이 신지로(왼쪽)과 다케쓰루 마사타카.

일본에 위스키가 처음 소개된 것은 19세기 중반. 1852년 지금의 오키나와인 류큐 왕국을 방문한 동인도 회사의 페리 제독(Matthew C. Perry)이 주최한 만찬에서 처음으로 아메리칸 위스키와 스카치 위스키가 제공됐다는 기록이 있다. 본격적인 일본 위스키 생산은 산토리의 창업자이자 일본 위스키의 아버지인 토리이 신지로(鳥井信治郞)에서 시작됐다.

일본 위스키의 역사

1899년 오사카 지방 상인의 아들이었던 그는 토리이란 작은 수입 물품 잡화점을 세우고 통조림과 와인을 수입해 팔았다. 그러다 ‘아카다마(赤玉)’란 포트 와인을 직접 개발해 큰 성공을 거뒀다. 산토리라는 이름은 ‘빨간 구슬’ 브랜드를 태양(sun)에 비유한 뒤 여기에 자신의 성 토리이를 붙여(sun+tory) 만든 것이다. 그는 여기서 거둔 성공을 토대로 위스키 생산업에 뛰어들려 했지만 이내 반대에 부닥쳤다. 막대한 자금과 오랜 시간을 투자해도 성공 확률이 희박하다는 위스키 산업의 속성 때문이었다. 주변의 반대에도 토리이 신지로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마침 스코틀랜드에서 위스키 제조 방법을 배우고 돌아온 다케쓰루 마사타카(竹鶴政孝)와 함께 1923년 일본 최초의 몰트 위스키 증류소인 야마자키 증류소를 세웠다.

1894년 히로시마의 양조장 집에서 태어난 다케쓰루는 오사카 공업고교(현 오사카대) 양조과를 나와 셋쓰주조에 취직했다. 조잡한 수준의 위스키를 생산하던 이 회사는 1918년 24세 청년 다케쓰루를 스코틀랜드에 2년간 유학을 보내 본토의 위스키 생산 기술을 익히도록 했다. 다케쓰루는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대에서 유기화학의 권위자였던 토머스 스튜어트 패터슨 교수 밑에서 수업을 받았다. 그는 항상 만년필을 품속에 지니며 증류소 내부를 꾸준히 스케치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1962년 일본을 방문한 리처드 버틀러 전 영국 부총리가 다케쓰루를 두고 “한 청년이 만년필 한 자루로 우리 기술을 훔쳐갔다”고 했을 정도였다.

설립 초기 야마자키 증류소 인근의 주민들 사이에선 증류소를 두고 “건물 안에는 보리만을 먹고 사는 우스케(usuke)란 괴물이 살고 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보리를 실은 우마차가 끊임없이 증류소에 들어가고 건물의 굴뚝은 계속 연기를 뿜어냈기 때문이다. 야마자키 증류소 가동 5년 후인 1929년 일본 최초의 위스키이자 산토리의 첫 위스키인 시로후다(白札, White Label)가 출시됐다. 결과는 처참했다. 당시 일본인들의 취향을 고려하지 않은 너무 짙은 풍미가 문제였다.

시로후다의 실패는 뜻밖의 결과를 낳았다. 스코틀랜드와 똑같은 제조기법으로 위스키를 만들고 싶어했던 이상주의자 다케쓰루가 ‘일본인의 입맛’을 중시한 토리이와 갈라서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후 다케쓰루는 1934년 홋카이도 북부인 요이치에 요이치 증류소를 세웠다. 닛카위스키의 전신이다. 자본력이 약했던 다케쓰루는 위스키 숙성에 필요한 5년간의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 과즙음료를 만들어 팔아야 했다. 닛카위스키의 전신이 일본과즙주식회사인 이유다. 닛카위스키는 이후 아사히맥주에 인수됐지만 지금도 최고의 위스키를 만든다는 자존심은 굽히지 않고 있다. 요이치 증류소에서는 아직도 석탄을 활용한 고전적인 제조 방식으로 위스키를 생산 중이다.

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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