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현대인의 병(305) - 이시형 <고려병원 정신신경 과장> 신경성 식욕부진(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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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서서히 식욕이 떨어진다. 물론 체중도 줄어들고 보는 사람마다 안색이 왜그러냐고 물어온다. 무슨 큰 병이나 아닌가 하고 병원에 가서 종합진찰까지 받아보았으나 별다른이상은 없다고 한다. 보약도 먹어보고 좋다는건 다 해보았으나 별효과가 없다.
내과적으로 뚜렷한 이유없이 이처럼 식욕이 떨어지는건 거의가 정신적인 이유에서다. 잘 알다시피 기분이 나쁘면 밥맛이 없어진다. 걱정거리가 있을 때도 예외는 아니다. 아내에 대한 의식·무의식적인 불만의 항의로서 밥맛을 잃어버리는 남편도 있다.
만성 피로가 겹쳤을 때도 그렇고, 생활리듬에 변조가 왔을 때도 식욕은 떨어진다. 밤잠을 설치면 아침밥맛이 없는경우등이다. 습관적으로 코피나 드링크류등을 상용하는 사람들도 만성적인 중추흥분작용으로 인해 배고픈줄 모른다.
이런 경우 곰곰 생각해 보면그 이유를 찾기가 어렵지 않다. 그러나 환자스스로 좀처럼 까닭을 찾을수 없는 은폐성 울증인 경우가 제일 문제다. 실제 입장에선 이런 환자들이 제일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 울증은 환자의 뚜렷한 자각증상이 없는게 특징이다. 생활주변에 우울할만한 이유가 없기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환자가 의식하지 못할뿐이지 사실은 정신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환자자신은 그게 우울할만한 이유가 안된다는 것들도 있고 때론 아예 까맣게 잊어버린 일들도있다. 하지만 이런 작은 일들이 잠재의식속에 쌓이면서 자기도 모르는사이 중추신경기능이 우울증으로 빠져들어간다. 따라서 환자자신은 우울하다고 느끼지못하므로 은폐성울증이란 이름이 붙었다.
은폐성울증에서 오는 식욕감퇴는 여느 울증에서처럼 주증상이 되며 2차적 증상으로 체중감소가 따른다. 멍하니 정신잃은 사람처럼 앉아있기도 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한숨이 잘 나온다.
불면증에서는 특히 새벽잠이 없는게 아주 두드러진 증상이다.
새벽 일찍 잠이 깬 이후 통 잠이 오질 않는다.
아침에 억지로 일어나봐야 온몸이 찌뿌듯한게 도대체 기력이 나질 않는다.
그래도 움직이다보면 차차 정오가 되어야 겨우 힘이 생긴다. 밥맛이 없으니 의욕도 떨어지고 모든 행동도 느려진다. 변비가 심한것도 특징이다. 적게 먹고 운동량이 적으니 변비가 더 심해지는 악순환이 된다.
이런 사람에게 제일 좋은 치료는 운동이다. 선진국에선 이런 환자들을 위해 「달리기 치료법」이란게 상당한 효과가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신체에 적당한 자극을 줌으로써 이것이 중추에 전달되어 저하된 신경기능을 자극하여 울증으로부터 해방된다는게 치료기전이다.
억지로라도 아침 일찍 일어나 샤워라도 하면 피부의 각성세포가 자극되고 산뜻한 기분으로 운동할 생각도 난다. 운동할 힘이 없다지만 힘이 없는게 아니고 기분이 안나는 것이다. 그래도 효과가 없을 땐 적절한 항울제를 복용해야 하는데 전문의의 삼담을 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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