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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정보 장사꾼들 사이에 떠돌아다닌 청와대 보고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정윤회 동향’ 보고서 등 청와대에서 작성된 문건들이 경찰·언론사는 물론 대기업의 대관(對官) 업무 담당자에게까지 흘러들어간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검찰은 문건 유출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한화S&C의 차장급 매니저 A씨가 정윤회씨와 승마협회 관련 동향이 담긴 청와대 보고서를 서울경찰청 정보1분실 한모 경위로부터 넘겨받은 혐의를 포착하고 그제 A씨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A씨가 넘겨받은 문건에 담긴 내용이 사실인지, 또 누가 작성한 것인지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 밝혀지겠지만 진실 여부와 별개로 청와대 문건이 대기업에서 정보수집 업무를 하는 민간인에게까지 흘러나갔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다.

 국가의 중대사와 기밀을 다루는 청와대 보고서가 마치 찌라시(사설 정보지)처럼 여기저기 마구 나돌아다녔다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청와대의 문서 관리와 기강에 구멍이 뚫리지 않고선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따지고 보면 지금 검찰이 벌이고 있는 문서 유출사건 수사도 언론사 두 곳에 청와대 문건이 유출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시작된 것이다. 또 청와대가 나중에 회수하기는 했다고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촬영됐거나 복사된 청와대 문건이 100여 장에 이른다는 관계자들의 진술이 나오고 있는 만큼 또 다른 문건이 얼마나 시중의 ‘정보 장사꾼’들 사이에서 거래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적했듯이 청와대 문건 유출은 국기문란 행위다. 경우에 따라선 국가 안위까지 위협할 수 있는 중대한 사건인 만큼 당국은 문건의 작성→유출→회수 과정을 샅샅이 수사해 유출 당사자는 물론 유출을 막지 못한 지휘 책임도 물어 엄중히 다뤄야 할 것이다.

 이번 유출 파문은 지난 4월 청와대가 처음 문건 유출 사실을 인지했을 때 대처했더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2차 사고’였다는 점도 지나쳐선 안 될 것이다. 청와대는 당시 세계일보의 ‘비리 행정관 원대 복귀’ 보도로 문건 유출 사실을 파악했다.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과 그 밑에서 일했던 박관천 경정이 다량의 문건을 복사한 사실도 확인했다. 그러고도 유출 책임을 묻지 않고 유야무야해 버렸다. 박 경정을 유출자로 확신할 만한 수준은 아니고 유출 문건이 찌라시 수준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조 전 비서관의 사표를 받고 박 경정을 원대복귀하는 조치를 취하는 선에서 마무리했다고 하나 이것 역시 납득하기 어렵다.

 아무리 내용이 시중에 떠도는 루머를 모아놓은 찌라시 수준이라고 해도 청와대가 만든 보고서라는 사실만으로도 폭발적 위력을 갖는다는 건 상식에 속한다. 그런 만큼 청와대는 검찰에 수사를 의뢰해 문건 유출자를 색출해 책임을 묻는 즉각적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당시 청와대가 왜 유출사건을 알고도 미온적으로 대처했는지, 다른 배경은 없었는지도 이번 수사 과정에서 명쾌하게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