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니파 반발 … 먹구름 안 걷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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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헌법 초안이 28일 제헌의회에서 확정됐다. 헌법초안위원회.대통령위원회의 서명에 이어 제헌의회도 표결 없이 통과시켰다. 그러나 수니파가 반발하고 있어 10월로 예정된 국민투표에서도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향후 미국의 이라크 재건 및 미군 철수 일정에도 먹구름이 남게 됐다.


이라크 헌법 초안위원회 위원들이 28일(현지시간) 바그다드의 컨벤션센터에서 헌법 초안에 서명한 후 기념 사진을 찍었다. [바그다드 로이터=연합뉴스]

◆ 11시간의 협상=초안위의 서명 작업은 밤샘 협의 과정을 거쳐 11시간이나 걸렸다. 26일 시아파와 쿠르드족이 제시한 수정안과 27일 수니파가 요구한 13개 개정 항목을 놓고 진통이 컸다. 하지만 서명 이후 작업은 일사천리였다. 한 시간도 안 돼 대통령위원회는 헌법을 승인했다. 의회도 초안위원장의 연설을 듣는 것으로 헌법안에 대한 논의를 끝냈다.

시아파 지도자 압둘 아지즈 알하킴은 "난항을 겪었지만 시한을 넘기면서까지 소수파와의 대화를 지속한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수주간 논란과 연기는 있었지만 이라크의 정치 일정이 한 단계 진전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다.

◆ 불완전 합의=수니파 위원들의 반발은 거세다. 수니파 협상대표 파크리 알카이시는 "시아파가 우리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았다"며 "다수파가 강제적으로 헌법을 제정하면 향후 이라크 내 분열과 대립만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수니파의 알리 미슈하다니 의원도 "의회 표결도 거치지 않은 초안을 수니파 주민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의 압력에 의한 '미국의 초안'이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알자지라 방송은 "수니파가 10월 국민투표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지난해 4월 마련된 과도행정법에 따르면 3개 주가 거부할 경우 헌법안은 자동 폐기된다. 수니파는 알안바르, 살라훗딘, 니네베 등 3개 주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 속타는 미국=15일, 22일, 25일 세 차례의 시한을 넘긴 헌법안 초안이 마련되자 미국은 일단 반기는 표정이다. 이라크 정치 일정이 큰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니파를 설득하지 못한 데 대한 불안감은 적지 않다. 그래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수니파를 설득했지만 실패했다. 미국은 헌법안이 국민투표할 때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태다. 수니파의 반대로 헌법 제정이 무산될 경우 이라크는 상당한 혼란으로 빠질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총선 실시-제헌의회 구성-새 헌법 제정'과정을 되풀이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저항세력이 준동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미국은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미군의 주둔 기간을 더 늘려야 한다. 국내에서 연일 반전 시위에 시달리는 부시 대통령으로선 큰 부담이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이라크 헌법 초안 주요 내용
대통령 선출 요건 등 대부분 시아파 뜻대로

이라크 헌법 초안 주요 부분은 다수파인 시아파와 쿠르드족의 의도대로 만들어졌다. 이라크를 아랍으로 명시해 이라크 인구의 20%인 쿠르드족을 배제하려던 수니파의 요구는 쿠르드족의 반발로 무산됐다. 수니파는 이슬람법이 '주요 근원'이라는 기존 규정을 '유일한 근원'으로 변경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이슬람을 모든 법의 우위에 두려고 한 의도가 무산된 것이다.

대통령과 총리 선출 규정에 대한 수니파의 요구도 거부됐다. 수니파는 선출 요건을 '의원 과반수 찬성'에서 '3분의 2 찬성'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수세력인 시아파가 요직을 독차지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과반수 찬성'으로 결정됐다. 바트당 참여자들을 축출하는 역할을 해 온 위원회의 해산도 12월 이후로 연기했다. 후세인 전 대통령 시절 수니파가 바트당의 중심이었다. 대신 수니파의 요구도 일부 수용됐다. 연방제 실시도 12월 새 의회가 구성된 이후로 연기됐다. 수니파는 연방제를 반대해 왔다. 수니파가 많이 사는 중부지역에는 유전이 없는 반면 시아파와 쿠르드족이 사는 곳에는 유전이 많다. 중앙정부제도가 아닌 연방제가 될 경우 수니파는 경제 능력이 크게 낮아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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