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론] '美國의 의도' 먼저 읽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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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정상회담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회담은 단순히 두 정상 간의 외교적인 첫 만남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라크전쟁의 승리 이후 더욱 강화되고 있는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와 북.미 간의 직접적인 대결구도로 치닫고 있는 한반도 상황 때문이다.

이번 회담의 결과에 따라 가까운 미래의 한반도 평화와 한.미관계가 좌우될 수 있다는 시기적 절박성으로 인해 더욱 그러하다.

*** DJ·부시회담 전철 안밟으려면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는 기본적으로 북핵 문제와 한.미 동맹에 대한 양국 간의 불신을 해소하고 적극적인 해법을 도출함으로써 보다 긍정적이고 실천적인 합의를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러한 방미의 목적에도 불구하고 양국 정상의 만남은 많은 난관을 예상케 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 출범 직후 2001년 3월 이뤄졌던 김대중-부시 간 한.미 정상회담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현 정부에는 더욱 준비된 자세가 요구된다.

우선 워싱턴을 방문하는 盧대통령은 소위 말하는 '코드'가 맞지 않는 부시팀을 예상해야 한다. 그들은 보수주의와 현실주의를 이념으로 내세우고 있으며 이에 대한 타협의 여지는 별로 없다.

김대중 정부는 이를 간과하고 정상회담을 통해 부시 정부에 햇볕정책을 설득할 수 있다는 안일한 판단을 했고, 그 이후 미국과의 대북 공조에서 내내 어려움을 겪었다.

햇볕정책이 궁극적으로 한반도에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을 가져다 주리라는 우리의 주장은 햇볕이 결코 악의 축을 선의 축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는 부시 행정부를 설득하지 못했다.

부시 행정부의 이러한 시각은 김대중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을 계승해 평화번영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현 정권의 대북 정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베이징(北京) 3자회담에서 한국이 제외된 사실이나 평양의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보여준 북한의 태도 등은 그간 대북 포용정책의 한계를 드러낸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우리의 대북 정책에 대한 미국의 이해를 구하는 작업이 더욱 어려운 일이 될 것이라는 예상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한.미관계,북핵 문제와 관련해 우리 정부가 갖고 있는 더욱 심각한 어려움은 현재 뚜렷한 지향점과 구체적인 정책이 없다는 점이다.

현 정권 출범 직후 내세웠던 자주적 외교,한.미관계의 재조정,북핵 문제의 적극적 중재자 등의 목표는 현실적 해법의 추구과정에서 본 모습을 잃고 오히려 한.미동맹의 이상 징후라는 부작용을 남겼다.

한국 사회에 새롭게 등장한 당위와 현실적 해법 간의 간극이 중요한 원인을 제공했다. 따라서 현 정부로서는 이번 회담을 통해 미국 측을 반드시 설득해야만 하는 구체적인 정책마저도 마땅히 없는 상황인 셈이다.

만약 현재의 상황이 이러하다면 이번 정상회담에서 우리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비교적 자명해진다. 우리 입장에 대한 설득보다는 미국 입장에 대한 이해가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대북 정책과 북핵 문제에 대한 한국의 입장보다 미국의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더 중요해지는 대목이다.

과연 미국 정부의 입장이 핵물질 생산 금지인지, 아니면 핵물질 수출 저지인지, 북핵 문제의 조속한 해결방침인지, 아니면 장기적 대응방침인지, 북.미 간의 양자해결인지, 아니면 다자해결 방식인지 등등 우리로서는 반드시 알아야 할 사안이 산적해 있다.

*** 북핵해법 실리 찾기 고민해야

북한에 대한 미국의 의지를 정확히 파악하지 않는 한 한반도에서의 불확실성은 제거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한국의 대북 정책 역시 이러한 현실 속에서 결정돼야 함도 주지의 사실이다.

소원해진 한.미관계를 복원하고 북핵 문제의 해법을 찾는 길은 단정적이고 일방적인 의사표현보다는 상대의 의도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현 정부의 이번 정상회담은 미국과의 대화에서 한국이 실질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실리적인 고민 속에서 준비돼야 할 것이다.
이승철 한양대 국제학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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