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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내년엔 소통과 창조가 가득했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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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프랑스 예술가인 벤 보티에는 “날 쳐다보세요, 그러면 나는 예술이 됩니다”라는 플래카드를 앞에 두고 니스의 차도 한복판에 앉아 있었다. 지나가는 많은 사람이 쳐다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벤의 이 행위가 예술이 될 수 있을까? 예술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예술가와 감상자의 소통이라고 벤은 말한다. 차도에 앉아 있는 자신과 플래카드를 관심 있게 바라보면서 여러 가지 반응을 보인 감상자들의 소통에 의해 예술작품이 됐다는 것이다.

 현대 작곡가 존 케이지의 ‘4분33초’라는 작품이 있다. 피아니스트가 무대 위로 걸어나가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 뚜껑을 연다. 그리고 정확하게 4분33초 동안 가만히 앉아 있다가 다시 뚜껑을 닫고 무대 밖으로 걸어나간다. 이것은 예술일까? 케이지는 감상자들이 연주회장의 이런저런 소음을 듣게 하는 경험을 제공했기 때문에 예술이라고 말한다. 음악이 소리를 통해 그 무언가를 전달하고 감상자와 소통을 이루는 행위라는 점에서 무의미한 소리들일지라도 음악작품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해프닝, 퍼포먼스 등으로 불리는 이런 예술들은 다빈치의 ‘모나리자’나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이나 르누아르의 소녀 그림과는 분명 달라 보인다. 하지만 예술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이것들 사이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도 있다. 어떤 것을 우리가 예술이라고 할 때에는 여러 가지 관점이 있을 수 있다. 예술가의 창조적 아이디어가 중요한지, 물리적인 결과물이 중요한지, 아니면 감상자가 나타내는 반응이나 소통이 중요한지에 따라 예술을 이해하는 폭이 달라질 수 있다. 벤과 케이지의 작품에서 다빈치 등의 작품과 같은 물리적인 결과물을 찾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창조적 아이디어나 소통이란 점에서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도 있다.

 다빈치는 윤곽선을 모호하게 처리하는 스푸마토 기법이라는 창조적 아이디어로 부드럽고 평온한 느낌의 여인상을 만들었다. 고흐는 두텁게 바른 물감이나 구불구불한 선으로, 르누아르는 색 점과 색 선으로 이룬 인상주의 방식이라는 창조적 아이디어로 이들 그림을 주목하게 했다. 그뿐이었을까. 만일 다빈치나 고흐나 르누아르의 그림에 감상자들이 반응을 보이지 않고 소통을 이루지 못했다면 지금처럼 미술관에서 이들 그림을 만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은 기억되지 않는 수많은 예술가의 작품들처럼 어딘가의 창고 속에 처박혀 있을 수도 있다. 이처럼 창조적 아이디어나 감상자와의 소통은 예술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벤과 케이지의 작품에서는 이 두 가지가 물리적으로 어떤 작품을 만들어내느냐보다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

 벤과 케이지의 행위는 엉뚱하고 무가치해 보인다. 전통적인 예술에 대한 생각과 너무 거리가 멀다는 점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예술이 창조적 아이디어가 없다거나 감상자와의 소통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예술이란 항상 고정된 틀로부터 자유롭게 벗어나 새로운 생각이나 느낌들을 불러일으켜 왔기 때문이다. 우리와의 소통을 기다리고, 새로운 성과들을 만들어내면서. 케이지의 작품은 그 후 미술과 무용을 포함한 실험적인 예술작품들에 많은 영향을 주고, 예술을 보다 풍성하게 만들었다. 벤의 퍼포먼스가 한 예술가의 치기이고, 그저 교통 흐름을 방해하는 경범죄(?)일 뿐이었는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한 해를 돌아보고 아쉬웠던 부분들을 떠올리며, 우리 삶에도 소통과 창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유난히 많은 사건과 슬픔과 아픔을 겪으면서 너무 경직된 방식으로 이 일들을 대하지는 않았는지. 나와 생각이 다르면 적으로 생각하고, 대화나 소통의 문마저 굳게 닫아버리는 이분법적 시각에 가두어 둔 것은 아니었는지. 예술처럼 기상천외한 발상은 아닐지라도 경직되고 고정된 틀에서부터 벗어나는 발상의 전환을 이룰 때 나와 너 사이에는 수많은 다름이 있다는 것을 볼 수도 있을 텐데. 그러면 꽉 막힌 소통의 문도 열리고, 지금보다 새롭고 편안한 삶을 위한 창조적 아이디어도 솟아날 텐데. 이렇듯 소통과 창조가 비단 예술에만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내년엔 이런 일들이 가득한 해가 되길 기대해 본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