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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미-소의 아베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소련의 신임 공산당서기장 「안드로포프」는 「브레즈네프」가 사망한지 얼마 안 되는 기간에 세 번 중요연설을 했다.
첫 번 연설은 그를 당서기장으로 선출해준 중앙위에서 투표직전에 했고 두 번째는 선출된 직후 그리고 세 번째는 「브레즈네프」 추도식에서였다. 첫 번째 연설에서 그는 「브레즈네프」를 찬양한 후 『제국주의자들에게는 평화를 구걸해서 얻을 수 없다. 소련군사력의 불굴의 힘에 의해서만 평화는 지켜질 수 있다』는 강경한 발언을 했다. 데탕트란 단어조차 그는 이 자리에서 언급하지 않았다.
두 번째 연설내용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세 번째 연설을 한 「브레즈네프」 장례식에서 그는 처음으로 데탕트 옹호론을 제시했다. 워싱턴의 한 보도는 이 사실을 뜻 있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와 동시에 「레이건」 대통령이 워싱턴주재 소련대사관을 찾아 조의를 표하는 모습을 모스크바 TV방송이 자세하게 보도해주었다던가, 예정에 없던 미국조문사절단과 「안드로프프」의 면담이 이루어졌다는 등 단편적이고 사소한 일들을 하나의 의미 있는 신호로 해석하는 측도 있다.
신경과민이 된 듯 이런 사소한 사안에서 거대한 정치기류의 변화징조를 찾으려는 이런 움직임은 물론 한 강대국의 지도자가 교체될 때는 으레 큰 정책상의 변화가 따르리라는 저널리스틱한 속성의 발동이기는 하지만, 과거의 사실에서 전례를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예컨대 뉴욕타임즈지는 「스탈린」이 사망한 53년부터 「흐루시초프」가 권좌를 구축한 56년 사이의 권력개편기간 중에 소련은 오스트리아의 중립화를 수락하는 평화조약에 조인하고 이스라엘과의 외교관계를 다시 수립하여 그리스 및 터키와의 분쟁을 종식시켰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런 선례에도 불구하고 미 소 관계가 조문기간에 당연히 상정할 수 있는 정도의 예우이상으로 될 조짐은 적어도 아직 보이지 않는다.
폴란드자유노조지도자 「레흐·바웬사」의 석방이나 「레이건」 대통령의 대소 가스관 장비 금수해제조치를 하나의 신호로 풀이하려는 무리도 엿보이지만 그 배경은 모두 자체 문제해소 정도이상의 뜻은 전혀 없다.
쿠바 미사일사태이래 최저수준으로 냉각된 미 소 관계를 다시 정상화시키기 위해 「브레즈네프」의 서거를 하나의 전기로 삼아야겠다는 미국의 의도는 이미 「레이건」 대통령이나 「부시」 부통령·「슐츠」 국무장관에 의해 거듭 천명됐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것이 「슐츠」 국무장관의 말처럼 『소련이 건설적 행동을 보이면 미국도 호응하겠다』는 지극히 탐색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지의 해설에 따르면 현재 백악관에 영향을 미치는 소련관은 대개 두 가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 하나는 백악관에 큰 영향을 미치고있는 견해로서 이런 것이다. 『소련은 현재 국내정치·경제면에 있어서나 동구세력권과 세계각지의 개입상태에 있어서 중대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따라서 최대의 압력을 가함으로써 미국은 소련으로 하여금 외부에서 손을 때고 국내문제로 시선을 돌리게 하거나 그들의 체제를 자유화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다른 하나의 견해는 이와 반대되는 내용으로 백악관에 아주 약한 영향력밖에 주지 못하는 것이다.
이 견해는 소련이 비록 체제상의 무기력을 보이고는 있지만 외부압력에 굴할 만큼 허약한 체제는 아니며 만약 소련이 궁지에 몰리고있다고 자각하게되면 미국에 위협을 줄 수도 있다고 보고있다.
백악관으로서는 이 두 가지 상황판단 중 어느 쪽을 정책입안의 바탕으로 삼고 있는지 분명치 않지만 지난 며칠동안의 움직임을 보면 양자를 섞어서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
「레이건」 대통령의 발언내용을 보면 강경일변도다. 그는 조문사절단 파견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힘을 통한 평화』를 거듭 강조하고 『탱고 춤은 쌍방이 협력해야 출 수 있다』며 소련이 먼저 말만이 아닌 행동으로 평화공존의 의사를 밝히라고 역설했다.
미국이 최근에 취한 두 가지 중요한 행동으로 대소 곡물금수해제와 시베리아 가스관 건설장비금수해제가 있지만 전자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국내 정치압력의 결과로, 후자는 서구 동맹국들의 반발로 취해진 것이지 소련에 대한 화해 제스처가 아니었다. 미국이 폴란드계엄령선포에 대한 보복으로 지난해 12월 취한 전자 및 고급기술 면허경신금지·미 소 무역협정연장 금지 등 일련의 대소 제재조처에 이어 올 6월 추가로 내려진 가스관장비금수조처는 총 공사비 1백10억 달러가 넘는 이 대역사에 각종 기술과 장비를 팔아보려던 미국·서구·일본의 수십 개 회사들에 타격을 주었다. 그 결과 미국과 서구동맹국들 사이에 심각한 알력이 빚어졌고 일부 회사들은 자국정부의 승인아래 미국의 결정을 무시하고 소련에 장비판매를 계속했다.
그래서 「레이건」은 「브레즈네프」 사망 전에 이미 대소 경제제재 중 가스관장비금수조처만은 해제하기로 결정, 발표 「초읽기」에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레이건」 대통령은 대소 강경발언을 한 후 주미 소련대사관을 찾아가서 『우리 두 국민이 평화로운 세계에서 살게되기를 기원한다』는 유화적 메시지를 조문록에 기록했다. 이와 같은 「레이건」 대통령의 강온 양면 반응은 소련의 새 지도자에게 미국은 종전의 기본입장을 고수하면서 냉각관계의 분위기를 완화해보겠다는 신호를 보내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소련 측이 보인 반응으로는 「안드로포프」가 예정에 없는 「부시」 부통령과의 면담에 응한 것과 「브레즈네프」 장례식과 겹친 미 소 통상회의를 『미루지 말고 계획대로 진행시켜달라』고 소련 측이 요청한 점등이 지적되고 있다.
경제문제 뿐 아니라 유럽 미사일 배치문제·전략핵무기감축협상 등 중요한 현안문제들을 안고있는 미-소 관계는 이제 오랜 냉각 끝에 조심스러운 「수화의 관계」로 접어들고 있다. 대화의 이전단계에 해당하는 이 미묘한 단계에서는 서로가 발표하는 공식성명보다는 서로가 분명한 언질을 주지 않고 암시만으로 상대방의 의도를 탐색하는 행동들이 더 큰 의미를 갖게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워싱턴=장두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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