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루트 벗어나면 치안부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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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베이루트=김동수 특파원】다국적 평화유지군의 증강을 위해 한국 등에 파병요청을 한 레바논정부가 베이루트주재 해당국가 대사들과 접촉을 벌인 것은 11월초로 밝혀졌다.
한국대사관의 문창화 대사의 경우 지난 9월23일 취임한 「아민·제마옐」 정부에서 「샤피크·와잔」 신임수상에 이어 2번째 자리를 차지하고있는 「알리에·살렘」 부수상 겸 외상으로부터 면담요청을 받고 외상집무실에서 10여분간 단독으로 만났다. 「살렘」외상은 문 대사를 통해 한국정부에 공식으로 평화유지군 파병요청을 했고 이와 관련된 외교문서는 6일 외무부에 접수됐다.
레바논정부의 평화유지군 증강을 위한 외교정책은 하루 뒤인 7일 레바논의 유력 일간지인 안나하르지를 통해 공개됐으나 당시 한국과 함께 파병요청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영국·스웨덴·네덜란드에 대해서도 「살렘」외상이 개별적인 면담을 가진 것으로 보도됐으나 이들 5개국 중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베이루트의 외교가에서 알려진 바에 따르면 지금까지 레바논정부가 직접 또는 미국 등을 통해 파병요청을 보낸 나라는 모두 13개국.
레바논 정부는 이 가운데 한국을 비롯해 영국·스웨덴·네덜란드·벨기에·오스트리아 등 6개국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있으며 이들 중 평화유지군 파병을 원치 않는 나라가 있을 경우 캐나다·그리스·스페인·콜롬비아·인도·태국·모로코 등이 그 대역을 해주기를 바라고 있다고 레바논 외무성의 한 고위관리는 말했다.
모로코에서는 이미 2천명 규모의 평화유지군 파병을 결정해놓은 단계에 있으나 아랍권에 속해있는 모로코는 사실상 이스라엘과 적대관계에 있기 때문에 레바논 측으로서는 아랍권군대를 받아들이기가 거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현지 신문들은 문 대사가 파병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베이루트주재 사우디아라비아 대사를 만났다고 보도했으나 문 대사 자신은 그가 지난 3윌 부임한 후 의전에 따른 첫 공식예방을 한 것뿐이라고 파병문제협의 사실을 부인했다.
문 대사는 이어 파병문제를 포함한 모든 업무는 본국의 훈령에 따라 처리하기 때문에 대사관측이 스스로 어떤 결정이나 협의를 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13일 기자를 저녁에 초대한 자리에서 이같이 밝힌 문 대사는 앞으로의 파병결정을 주요사항에 대해서는 모두 본국정부가 주도적으로 해결하게 될 것이며 현지대사관에서는 정부의 결정을 돕기 위한 자료수집 등의 일을 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사가 그렇듯 베이루트주재 각국 대사관은 대부분 비상업무체재에 들어가 파병요청을 받은 당사국 대사들은 물론 북괴와 같이 이해가 엇갈리는 측에서는 레바논 외무성을 중심으로 매우 분주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수도 베이루트는 레바논 정규군과 미·불·이 다국적평화유지군의 활동으로 비교적 치안상태가 좋았으나 시 외곽으로 벗어나면 어떤 위험에 직면하게 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불안한 상태다. 지방항구나 도시로 이어지는 도로들도 수시로 곳곳에서 검문·검색이 실시되고 있으며 특히 총격·폭발·테러사건 등이 일어난 지역에서는 4∼5일 동안 교통이 차단되기 일쑤여서 취재나 여행에 많은 지장을 주었다.
물가는 좀 비싼 편이었으나 전쟁의 와중에서도 달러환율 등은 매우 안정되어 있었다.
침실 2개가 달린 아파트의 경우 월세가 1천∼1천5백 달러로 미국보다 약간 높은 편. 환율은 지난해 3월 1달러에 3.97레바논 파운드가 거의 같은 수준으로 유지돼 달러당 4.1파운드에 거래됐다. 전쟁을 치른 나라에 흔히 나타나는 암시장도 이곳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레바논에 살고있는 한국교포는 베이루트에서 개인사업을 하는 이성 씨(40) 한가족뿐. 부인·아들 2명 등과 함께 5년 전 이곳으로 온 이씨는 『레바논이 중동의 문화·교육·무역중심지 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안정을 회복하면 「중동의 파리」인 베이루트가 과거의 번영을 누리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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