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공부 좀 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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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학생을 자식으로 가진 부모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자녀의 학교공부에 대해 이러한 생각들을 하게된다.
『우리 집 아이가 공부를 조금만 더 잘해 주었으면….』
『스스로 알아서 공부 해주면 저 좋고, 나 좋고, 참으로 좋으련만….』
『웬수 같은 그 놈의 공부…잘하게 하는 무슨 방도는 없을까?』
어떤 부모의 경우는 이러한 생각에 아타깝다 못해, 자식공부 잘하고 못하는 것을 하나의 운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탄식하는 경우도 있게된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의 우리 사회가 그 원인이야 어디 있든 간에, 고도의 지식산업사회인 것만은 분명한 가운데 마구 치솟고 있는 학력 경쟁 속에서 자식들을 키우자니 안타깝고 힘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옛날만 같아도 『공부야 보통 정도가 되어도 괜찮아…』라고 말했던 그「보통」의 기준이 이젠 「사람을 기른다」는 궁극의 교육목표도 아랑곳없이 높아지고 있는 것도 또한 문제다.
이러다 보니 자연 부모된 마음은 일부의 기특한 자식(?)들을 가진 이들을 제외하고는 『부모마음 애들은 모른다』는 식의 한탄과 함께 자식들의 공부에 대한 원은 대단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토록 부모네들이 자식들에게 「공부 좀 잘해 달라」는 식의 바람이나 애원, 아니면 협박 등이 얼마만큼이나 성과가 있는 것이냐 하는 점이다.
결론지어 말해본다면, 자녀의 학습효과란 누가 부탁하고 바란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자식위해 애쓰는 간절한 부모의 마음이야 헤아릴 수 없는 것이나, 과연 아이들은 그것을 어디까지 이해하고 행동에 옮길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일까? 하물며 한창 놀기 좋아하는 나이에 당장의 공부가 그다지 자기 자신의 매일 생활에 큰 영향이 없는 그들에겐 좀처럼 공부가 장래의 행복 등으로 연결되리란 어려운 것일게다.
공부 좀 해달라고 애원하고 부탁하기보다는, 자녀의 학습지도는 침착하고 지혜로운 부모의 적극적인 도움이 요구된다. 이를테면 어떤 학습과제를 풀어 가는 어린이를 보고 「어디를 모르느냐?」고 다그쳐 묻기보다는 「어디까지를 알고 있느냐」를 물어 볼 수 있는 여유 있는 접근과 긍정적인 기본자세 같은 것이 필요할 것이다.
어린이가 어떤 새로운 학습사태에서 모르고 있다는 상황은 어디서부터 모르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헤매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이러한 사태를 놓고 부모가 초조하고 다급한 나머지 「너는 어디를 그렇게도 모르느냐?」고 다그치고 안타까워하던 정확한 대답은 물론 학습의 가장 기본인 동기유발마저도 구할 수 없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자녀의 올바른 공부는 애원하고 부탁하는 것보다는 부모의 침착하고 자연스런 학습동기유발의 유도가 보다 효과적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홍기형
▲1937년 평양 출생 ▲캐나다 알버타대학서 교육학 박사학위 취득 ▲한국행동과학연구소 부소장 역임 ▲한국교육개발원 기획조정실장(현재) ▲저서 『진로지도의 실제와 이론』『나의 진로』『대화를 통해 키워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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