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수 교수의 보석상자] 페리도트 파라오의 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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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가장 오랜 역사가 있는 보석 중 하나가 페리도트일 것이다. 기원전 1500년부터 이집트 파라오의 명령에 의해 홍해의 작은 화산섬 자바르가드 섬(세인트존스 섬)에서 노예들이 이 돌을 채광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불모지나 다름없는 작고 황량한 이 섬은 페리도트와 오랜 인연이 있다. 이 섬은 기원전 고대 이집트로부터 제1차 세계대전 때까지 약 3500년간 페리도트를 생산했던 전설적 산출지다. 페리도트 하면 바로 이 섬이 연상될 정도다. 지금도 과거의 채광 흔적이 황량한 섬의 언덕배기에 남겨져 있다.

자바르가드 섬 주변 지역은 짙은 안개가 잦아 고대에는 접근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래서 뱃사람들은 이 섬을 그리스어로 탐색한다는 의미의 토파조스라고 불렀다. 그런 이유로 이 돌은 처음 '토파즈'라 불렸으나 18세기에 이르러 아랍어로 보석이라는 뜻의 '파리다트'가 됐다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페리도트로 바뀌었다. 이 돌은 로마 시대에도 사용된 기록이 있으나 본격적으로 유럽에 소개된 것은 십자군에 의해서이며, 이후 장신구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페리도트는 자연계에 산출되는 규산염 광물 중 감람석이라는 광물로 녹색을 띤다. 이 광물은 녹황색이나 녹색을 띤 갈색으로 산출되기도 하는데 역시 최상의 페리도트는 진한 녹색에 약간의 황색이 가미된 것이다. 녹색을 띠는 페리도트는 대체로 철을 10~15% 함유하고 있으며, 미량 들어 있는 니켈과 크롬에 의해 녹색이 풍부해지게 된다. 다른 보석광물과 다르게 오로지 녹색 계열로만 산출되는 광물이다.

실제로 감람석은 염기성 마그마의 주요한 구성 광물이나 보석용 질을 갖는 페리도트의 산출은 흔하지만은 않다. 중세에는 이 보석을 착용하는 사람은 악령으로부터 보호받는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 전설은 오랫동안 전승됐다.

자바르가드 섬의 광산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명을 다해 완전 폐기됐으나 1900년대 중반 파키스탄 고산지대에서 고품위 페리도트의 대규모 산출지가 발견되면서 보석업계에서 다시 등장했다. 현재는 파키스탄 외에 미얀마.브라질.미국 등이 페리도트의 주요한 산출국이다. 이 중 최상품 루비의 산출지이기도 한 미얀마 모곡에서 산출되는 것이 현재 가장 좋은 페리도트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에서는 1749년 시베리아 지역에 많은 운석이 떨어진 적이 있는데 이 운석이 페리도트였으며,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러시아의 국가보석으로 지정된 것 중 우수한 페리도트가 여러 개 들어 있다.

한때 에메랄드로 오인되기도 했던 녹색 계열의 보석으로서 일반인의 구매가 가능한 가격대를 유지하고 있어 많은 양이 거래되며 국내에서도 유통되고 있다. 자연산으로 이와 유사한 것으로는 녹색의 전기석이 있는데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페리도트는 8월의 탄생석으로 결혼 16주년 기념 보석으로 사용된다.

연세대 교수(지구시스템과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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