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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EU 무역전쟁 확전 조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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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세계무역기구(WTO)가 지난 7일 미국 상품에 대한 유럽연합(EU)의 보복관세 부과를 승인함에 따라 미국-EU 간 무역전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WTO는 미국의 해외판매법인(FSC) 면세 혜택에 대한 EU 측의 제소를 받아들여 "시정조치가 없을 경우 EU는 미국산 제품에 대해 연간 40억달러 규모의 보복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확정판결했다. 이는 WTO 창설 이래 승인된 최대 규모의 보복조치다.

WTO의 이번 판정은 EU가 1997년 "미국이 마이크로소프트.보잉 등 자국 대기업들이 버진아일랜드 등 조세피난처에 설립한 해외판매법인에 대해 소득세 면세 혜택을 부여함으로써 사실상 수출보조금을 지급하는 불공정행위를 저지르고 있다"며 제소한 분쟁에서 최종적으로 EU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파스칼 라미 EU 무역담당 집행위원은 판결 직후 "미 정부가 2003년 회계연도가 종료되는 오는 9월 말까지 조세법상 FSC 조항을 폐지하지 않을 경우 내년부터 보복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EU는 이미 가축.장난감.보석.원자로 부품 등 보복 대상 품목 리스트를 작성해둔 상태다.

미 의회와 백악관은 "연내에 관련법 개정을 완료하겠다"면서도 당장 면세 혜택을 철폐할 경우 내년 대선을 앞두고 대량 실업사태가 발생할 수 있어 우려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미국이 지난해 3월 EU산 철강에 대해 최고 30%의 관세를 매기기로 하면서 촉발된 미-EU 간 무역분쟁이 유전자변형식품(GMO), 달러-유로 간 환율 전쟁 등으로 확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항공기 엔진을 둘러싼 공방도 뜨겁다. EU가 28억달러 규모의 차세대 군용수송기 사업인 A400M 프로젝트의 엔진 공급업체로 당초 거론된 미국의 프래트 앤드 휘트니를 제치고 유럽 업체를 선정한 데 대해 미 의회와 업계는 "WTO에 제소하겠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의 존 라슨 하원의원은 "입찰에서 EU 측이 20%나 값이 싼 프래트 앤드 휘트니 제품을 두고 유럽엔진컨소시엄(EPI)을 선정한 것은 공정거래 규정 위반"이라면서 "백악관에 이 사건을 조사해 필요할 경우 WTO에 제소하도록 촉구하겠다"고 밝혔다.

달러당 0.88유로까지 치솟는 등 출범 4년 만에 유로화가 초강세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과 관련, 미-EU 간 물밑 환율전쟁도 치열하다.

백악관은 '강한 달러'정책을 고수하겠다고 천명하고 있지만 미국 상품의 수출경쟁력이 떨어질 것을 우려해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고 외신은 전했다.

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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