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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다르크로 대변되는 역사의 도시 랭스, 그 풍경 속으로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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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내려앉은 랭스 노트르담 대성당 풍경.

샴페인의, 샴페인에 의한, 샴페인을 위한 도시
마릴린 먼로의 그 유명한 어록 전문은 이렇다. “밤에는 샤넬 N°5를 입고 잠들며, 아침에는 파이직 하이퍼 샴페인으로 하루를 시작해요.” 영화 <카사블랑카>에서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를’이라 읊조리던 배우 험프리 보가트 손에는 멈 샴페인 칵테일이 들려 있었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루이 15세의 연인이었던 당시 파리 사교계 아이콘 퐁파두르는 ‘샴페인은 마신 후에도 여인의 아름다움을 지켜주는 유일한 술’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시대를 불문하고 우아함을 추구하고 로맨틱한 순간을 맞이할 때 찾는 샴페인, 이 술의 중심지가 프랑스 샹파뉴아르덴(Champagne-Ardenne)의 주도 랭스(Reims)다.

샹파뉴 지역 내에서 생산된 스파클링 와인을 지칭하는 ‘샴페인’. 스페인의 카바(Cava), 이탈리아의 스푸만테(Spumante), 그리고 프랑스 타 지역의 제품과 법적으로도 엄격히 구분되는 스파클링 와인의 대표 도시답게 랭스 그리고 이곳에서 20분 거리인 또 다른 소도시 에페르네(Epernay)에는 오랜 역사를 지닌 수많은 샴페인 하우스와 와인 셀러 등이 몰려 있다.

랭스는 파리에서 북동쪽으로 150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TGV(고속열차)의 파리-랭스 구간의 이동 시간도 약 45분 정도로 그리 멀지 않다. 프랑스 내 와인 산지 중 가장 추운 지역에 속하는 기후적 특성, 그리고 석회질로 이뤄져 배수가 잘되는 샹파뉴의 심토층 토양이 샴페인에 적합한 포도 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17세기, 샹파뉴 지역 베네딕트 수도원의 수도사 돔 페리뇽이 지하 와인 저장고에서 우연히 만들어진 샴페인을 처음 맛보고 개발하게 된 것도 다 기후와 토양의 조건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샴페인이 파리와 프랑스 전역을 넘어 세계인들이 즐기는 스파클링 와인으로 정착된 데는 역사적, 종교적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도시 자체의 힘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랭스는 샴페인뿐만 아니라 역사가 스며든 기념비적인 건축물만으로도 방문해볼 가치가 충분하다.

랭스 시내의 대중 교통은 모두 샴페인 거품처럼 톡톡 튀는 컬러다.

거리 곳곳에서 만나는 유네스코 문화유산
샴페인의 도시라는 애칭을 얻기 전 랭스는 ‘프랑스 대관의 도시’, ‘프랑스 정권 확립의 도시’라고 불렸다. 지역 설화에 따르면 랭스는 로마를 건국한 왕 레물루스의 쌍둥이 동생인 레무스(Remus)에 의해 세워진 도시로, 이 지역 주민들을 레무스의 사람들(Remes)이라 부른 데서 그 이름이 유래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곳이 프랑스 역사와 종교의 중심에 우뚝 선 것은 로마의 몰락 후 496년 당시 게르만족이 세운 프랑크 왕국의 클로비스 왕의 개종과 대관식이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치러지면서부터. 클로비스 왕이 정복한 땅의 주민들이 믿던 가톨릭교로 개종 후 정신적 통합을 이뤄 프랑스 건국의 틀을 마련한 대사건이었다. 그 후 프랑스 왕들의 대관식은 지속적으로 랭스에서 치러졌는데, 1429년 영국과 프랑스 간의 백년전쟁 중 잔다르크가 신의 계시를 받고 샤를 7세를 모셔와 대관식을 치르며 프랑스의 정통성을 강조한 곳도, 긴 시간이 흘러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 서약서가 쓰여진 곳도 바로 랭스다. 역사의 궤적과 함께한 만큼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유적도 노트르담(Notre-Dame) 대성당, 팔레 뒤 토(Le Palais du Tau), 생레미(Saint-Remi) 대성당 3곳이나 된다.

파리, 샤르트르와 더불어 프랑스 3대 노트르담 사원으로 꼽히는 랭스 노트르담 대성당은 정원의 잔다르크 동상과 내부에 있는 샤갈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는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이곳에서 행해졌던 샤를 10세의 대관식에 참여했다가 영감을 받아 쓴 작품. 팔레 뒤 토는 주교의 거주 공간으로 현재는 보물과 조각상을 전시한 박물관으로 사용되며, 생레미 대성당은 클로비스 국왕 개종 시 세례했던 대주교 생레미의 유골이 전시되어 있다.

중세시대를 거치면서는 무역과 교통의 중심지로 떠올랐으며 샴페인이 궁중 연회에 공식적으로 등장한 루이 14세 시대를 지나 루이 15세에 이르러서는 왕의 특명에 따라 랭스 지역 샴페인의 종류를 개발하고 상품 개수도 늘리는 등 샴페인 발전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이것이 현재까지 랭스를 ‘샴페인 도시’로 남게 한 기반이 되었다. 여기에 제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들어선 아르누보, 그리고 그와 상반된 아르데코 건축물들이 도시에 또 다른 색을 덧입혔다.

랭스 시내와 근교의 접경 지역에는 샴페인 양조를 위한 빈야드가 밀집되어 있다.

와인 저장고와 와인 모노레일이 어우러진 현재진행형 도시
역사를 바탕으로 한 문화유산과 샴페인 하우스의 이름에만 의존했다면 랭스는 샴페인 산지가 있는, 저물어가는 중소도시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와인 셀러나 레스토랑뿐만 아니라 도시 곳곳에 ‘샴페인’ 모티브를 세련되게 적용시킨 영민함 덕에 과거와 현재를 잇는 생동감 넘치는 샴페인 관광 도시로 거듭날 수 있었다. 특히 고딕 스타일과 아르데코 건축물 사이를 오가는 톡톡 튀는 컬러의 현대적인 트램(노면전차)은 교통난 해소를 위해 2012년 개통한 것으로, 샴페인 잔에서 영감 받은 전면 디자인과 샴페인 버블을 시각화한 6가지 컬러로 도시 아이덴티티 극대화의 성공 사례로 꼽힐 정도다.

랭스 시와 유명 샴페인 하우스들의 적극적인 홍보와 다양한 투어 프로그램 개발도 세계인들을 지속적으로 끌어들이는 또 다른 요소다. 랭스를 대표하는 샴페인 하우스로는 뵈브 클리코(Veuve Clicquot), 포무리(Pommery; 파이퍼 하이직(Piper-Heidsieck)은 이 샴페인 하우스에 합병되었다), 멈(Mumm), 태탱저(Taittinger), 랑송(Lanson), 루이나(Ruinart) 등이 있다. 이들 대다수는 랭스 시내와 근교의 경계에 있는 완만한 구릉지인 몽타뉴 드 랭스에 위치하고 있다. 일반인 대상의 영어와 프랑스어 투어 및 시음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는데다 방문 며칠 전에만 이메일로 신청하면 방문 가능하도록 절차도 간소하다.

지난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로마시대의 엄청난 규모의 와인 저장고부터 샴페인 하우스 건축물 그리고 귀족 오너들의 화려한 저택과 성 역시 또 다른 볼거리. 샴페인 마니아라면 샹파뉴 지역의 또 다른 와인 성지인 에페르네에 있는 페리에주에(Perrier Jouet), 모엣 샹동(Moet&Changdon), 폴로저(Pol Roger) 등의 샴페인 하우스까지 돌아보는 일정도 좋겠다

샴페인 하우스

모엣 샹동, 돔 페리뇽 샴페인 하우스
LVMH가 운영하는 260년 전통의 샴페인 하우스. 샤르도네, 피노 므니에, 피노 누아르 세 가지 포도 품종을 블렌딩한다. 정원에는 돔 페리뇽의 동상이 관광객들을 반기며 브랜드를 대표하는 화이트와 옐로 컬러를 활용해 가이드센터를 꾸몄다.
(www.moet.com)

페리에주에 하우스
1811년 피에르 니콜라 마리 페리에와 아델 주에 부부가 세운 샴페인 하우스로 2005년 페르노리카에서 인수했다. 샤르도네 중심의 여성스러운 샴페인을 생산하며 해외에서 더욱 인기가 높은 편. 샴페인 하우스는 와인 전문가에 한해서 예약제로 운영된다.
(www.perrier-jouet.com)

뵈브 클리코 하우스
프랑스어로 ‘미망인 클리코’라는 뜻을 지닌 ‘뵈브 클리코’는 27세에 남편을 잃은 바브 니콜 퐁사르당이 사업을 물려받아 키운 샴페인 하우스. 240년 전통으로 업계 최초로 옐로 레이블을 사용했다. 드라이한 맛과 섬세한 기포가 특징.
(www.veuve-clicquot.com)

크루그 하우스
1843년부터 6대째 수작업으로 포도를 수확해 양조하는 오트 쿠튀르 샴페인 하우스. 15개월간 숙성 후 추가로 약 6년간의 2차 숙성 과정을 거쳐 한 해에 한정 수량만을 생산한다. 샹파뉴 지역에만 319개의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다.
(www.krug.com)

멈 하우스
부드러운 풍미의 멈은 세계 3대 샴페인 하우스이자 프랑스 내 샴페인 판매 1위 브랜드.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의 붉은 리본 레이블 장식이 아이콘이다. 나폴레옹이 즐겨 마시던 샴페인으로, 유럽 왕실의 공식 샴페인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www.ghmumm.com)

포무리 하우스
1858년 ‘샴페인은 달콤하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드라이한 샴페인 ‘브뤼’를 처음 선보였다. 뵈브 클리코와 더불어 미망인이 성공적으로 키운 브랜드로 꼽힌다. 로마시대의 긴 와인 저장고로 유명하며, 샴페인 투어 외에 미망인의 저택 투어도 가능하다.
(www.vrankenpommery.com)

폴로저 하우스
1849년 설립되어 5대째 이어온 명가. 처칠이 즐겨 마셨다 하여 ‘윈스터 처칠’ 샴페인으로도 불린다.풀보디의 남성적인 풍미가특징. 윌리엄 왕자의 결혼식 샴페인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지하 셀러에는 약 400만 병의 샴페인이 저장되어 있다.
(www.polroger.com/english)

태탱저 하우스
샤르도네 품종 위주의 가볍고 산뜻한 풍미의 샴페인을 생산한다. 1930년대에 문을 열어 다른 샴페인 하우스에 비해 역사는 다소 짧은 편이지만 빠른 시간 내에 주요 샴페인 시장에 안착했다.
(www.taittinger.com)

조민정 헤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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