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따라 새옷 입어야 어울려 보이는 건 일종의 최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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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벌써 창 밖에서 들이미는 따뜻한 햇살이 반가운 계절이 돌아왔다. 장롱 밑바닥에서 오랫동안 깔려 있던 겨울옷들도 햇빛이 그립겠지 싶어 모조리 끄집어내어 빨랫줄에 널어본다. 한나절이나 일광욕을 시킨 뒤 훌훌 털어 다시 장롱 밑으로 집어넣기 전에 거울 앞에서 한번씩 입어 본다.
사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차례씩 옷들을 앞당겨 입어보는 것이 내게는 아주 중요한 연중행사다. 작년 겨울에는 분명히 몸에 꼭 맞았던 스커트 허리 단추가 아뿔싸! 올해에는 손가락 한마디 정도나 벌어질 때도 있고, 반대로 품이 작아서 한번도 입지 못했던 원피스가 데꺽맞아 환성을 지를 때도 있다.
그런데 몸이 불었다 줄었다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내 책임이니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는 노릇이나 치마길이가 길어 보였거나 짧아져서 못 입는 것은 어이하리. 그것은 이 나이에 내 키가 자라났거나 아니면 줄어든 탓은 분명히 아니다. 다만 유행이라는 안경이 그런 변덕을 떨게 보이는 것뿐이다.
『올 겨올 유행은 무릎 아래 10cm입니다』라는 옷가게 아주머니의 말을 분명히 듣고 새로 산 치마길이가 껑충하게 짧아 보이는 것은 그새 그 유행이라는 것이 발목까지 끌릴 지경으로 바뀌어진 탓일 게다. 사람의 눈은 간사해서 유행보다 조금만 더 길거나 짧은 것을 볼 때 대뜸 구식이라는 생각이 드니 정말 옷장수들도 그 덕택에 살아가는 것이겠지.
요새처럼 떨어지거나 해지지 않는 옷감들이 나돌 때는 더더구나다.
소문을 듣자니 요사이 미국에서는 남자들의 머리 길이가 다시 짧아진다나.
작년에 그 곳에 가봤을 때는 뒤로 보아서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정말 눈 비비고 보아도 구별하기 어렵더니. 덕택에 우리 나라 남성들도 머리를 길러 지지기도 하고 미장원 신세들을 많이 졌었는데 올해에는 그 아까운 머리들을 다시 자를 것인가 하고 웃어본다.
몇 번 입어보지도 못했던 옷들이 유행이 지났다는 핑계로 못 입게 되어 아낌없이 구제품으로 나가고 보니 몇 해 뒤에는 그 유행이 어김없이 다시 돌아와 아쉬운 마음이 들었던 일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인간의 머리란 한계가 있어 다람쥐가 쳇바퀴 돌듯 늘 같은 둘레안에서 맴돌고있는 것이 아닐까.
도대체 유행이라는 이름으로 넥타이가 넓어졌다 좁아졌다, 또 바지통의 넓이가 나팔바지가 되거나 홀태바지가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첫째는 장사하는 분들의 손끝에 놀아나는 소비자들이 해마다 새 것을 사야하는 고역을 치르면서도 그래야만 아름답고 멋있어 보인다는 최면술에 걸리고 있는 탓일 게다.
둘째로는 모든 것에 싫증을 잘 내는 인간들이 이래도 만족이 없고 저래도 개운치 않으니 손바닥을 뒤집듯이 자꾸만 변덕을 부려가며 행여나 만족을 찾을까 하고 허덕여 보는 것일 게다.
어리석은 인간이여. 이 지구 안의 물질이나 명예나 권력이나, 아니 예술이나 사람마저도 인간에게 영원한 만족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왜 깨닫지 못하는고.
그것들은 늘 변하기 때문이다. 권력을 잡으려고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처단한 바로 그 흉기로 자신의 목숨을 잃는 예를 우리는 역사 속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지 않은가. 젊어서 얼굴에다 몇 십만 달러까지 보험을 걸었던 여배우가 늙고 병들자 추한 모습을 비관하여 자살해 버렸다는 기사를 읽은 일도 있다.
우리는 쉽게 번해버리는 것들에게 기대를 걸거나 만족을 얻으려 하지 말자. 그것들은 번번이 우리를 실망시키기 때문이다. 영원히 변치 않는 것.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뿐이다. 그 사랑을 가슴에 담고 다닐 때만이 모든 인간이나 물질들이 사랑스럽고 만족스럽게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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