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따달라 … 동물 구해달라 … 119 구조대 "난감하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3면

▶ 맨홀에 빠진 강아지를구한 119 구조대. [소방방재본부 제공]

"집 안에 아기가 혼자 있는데 현관문이 안 열려요. 빨리 와 주세요."

"가스불 위에 냄비를 올려두고 나왔는데 문이 잠겼어요. 불나면 어쩌죠?"

시민들은 이럴 때 119 구조대를 찾는다. 출동한 소방대원들은 현관문을 기술적으로 따는 열쇠공과 달리 집에 들어가 문을 연다. 이웃집을 통해 들어갈 수도 있지만 비어 있거나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경우가 있어 옥상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와 베란다로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렇게 위험한 작전 끝에 문을 열어보면 아기도, 불 위의 냄비도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게 구조대원들의 하소연이다. 화급하지 않은 일에 전문 구조 인력이 남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 소방방재본부는 "119 구조대가 올해 7월 말까지 출동한 2만6644건 중 문 열기와 동물 구조가 8648건"이라고 23일 밝혔다. 전체 출동 건수의 32.4%다. 7042건인 화재 신고 출동보다 많다. 서울시에서 하루 평균 이뤄지는 127건의 출동 가운데 41건이 문 열기와 동물 구조를 위한 것이다. 소방방재본부 관계자는 "문 열기와 동물 구조를 위한 출동이 너무 많아 화재 진압과 인명 구조라는 본연의 업무가 방해받을 정도"라며 난감해했다.

본부 관계자는 "일부이긴 하지만 열쇠점 출장 비용과 시간을 아끼기 위해 아기가 있다거나 화재 위험이 있다고 둘러대는 경우도 있다"며 "반대로 열쇠점들은 119 구조대가 문 여는 일을 하는 바람에 일거리가 줄었다며 항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동물 구조는 빠르게 늘고 있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집이 늘면서 동물 구조 건수는 최근 5년간 두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2000년에 2196건이던 것이 2004년에는 5407건, 올해는 7월 말까지 3411건이다.

서울시 소방방재본부는 "어린이.장애인 등이 실내에 갇혀 있거나 가스밸브가 열린 등 위험한 상황을 제외한 문 열기는 인근 열쇠점으로, 동물 구조는 관할구청이나 동물구조관리협회로 인계해 단순 업무를 줄일 방침"이라고 밝혔다. 서울시립대 도시방재연구소 윤명오 소장은 "우리나라는 미국.일본에 비해 방재 인력이 3분의 1 정도밖에 안 되는데 단순 업무 폭주로 본연의 구조 업무가 방해받고 예산이 낭비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권근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