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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며 인사말 쓴 것 읽다 감정 복받쳐 눈물"|"의보 일원화 방안, 시한내 제출은 절대 무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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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홍일점 장관의 눈물」이라고 그토록 화제가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여자는 역시…』할까봐 걱정을 몹시 했는데 꼭 그렇게 만은 보지 않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웃었다.
초록색 한복에(밖에선 늘 한복만 입는다) 수수한 머리 매무새, 강한 눈빛만 아니라면 그저 평범한 중년주부로 보이는 김정례 보사부장관. 1주일 넘게 승강이를 벌여온 의료보험 일원화문제 때문에 『밤잠을 못 잔』탓인지 다소 초췌해 보였다.
그날(10월 27일 국회보사위)의 눈물은 「무리한 요구를 거듭하는 국회」나 「사정을 알면서 일방적으로 몰아대는」 짓궂은(?) 국회의원들에 대한 감정의 표현은 결코 아니었고, 극히 개인적인 동기에서 우발적으로 빚어진 것이라고 했다.
의료보험 문제뿐 아니라 요즘 복잡 다난한 나라 일을 생각하고 매일 새벽기도를 하는 중에 그날도 새벽 3시에 눈물로 기도를 마치고 보사위가 속개될 때 할 인삿말을 직접 다시 썼다는 것. 막상 보사위에서 그 인삿말을 읽어 내려가노라니 기도하며 원고를 쓸 때의 그 뭉클한 감정이 치밀어 올라 목이 메고 그만 눈물이 쏟아지고 말았다는 해명이다.
『사실은 내가 정과 눈물이 너무 많아요.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보고도 눈물이 쏟아질 때가 있다니까요. 그러나 남 앞에서는 좀체 눈물을 보이지 않는데 이번엔 그만 실수를 한샘이지요. 공인으로서 눈물이 많은 것도 흠이 되는 것 같아 요즘은 이 눈물을 좀 거두어 줍시사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눈물이 메마른 요즘 눈물 많은 여성장관 한 사람쯤은 있어야할 법도 하지만 본인은 눈물 때문에 앞을 못 볼까 걱정하는 듯 했다.
장관의 기소에도 불구하고 의료보험 일원화문제는 아직 미결이다.
『12월 18일까지 보험일원화를 전재로 한 보사부의 전국민 의료보험확대방안을 내놓으라는 질의에 최선을 다해 노력은 하겠습니다. 그러나 국회에서도 여러번 얘기했지만 시간적으로 정말 무리입니다. 그때까지 꼭 내놓는다고 확답은 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거짓말을 못하는 성격」때문에 오해도 받고 손해도 많이 본다는 김 장관은 형식적인 초안을 급조해 내놓을 수야 있겠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했다. 국회의 권위를 위해서도, 정부의 신뢰를 위해서도 그 같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제스처를 쓸 수도 없고, 써서도 안 된다는 주장이다. 안을 내놓으려면 정말 알맹이를 담아야하는데 불과 20여일 시한은 불가능한 요구라는 것이다.
『보사부의 생각도 장기적으로 의료보험을 통합해야 한다는데는 같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단시일 내에 통합은 무리가 따른다는 것입니다. 지금처럼 어려운 나라살림형편에서 보험에 정부예산을 많이 쓸 수도 없는 것 아닙니까. 정부예산이란 곧 세금인데….』
명분에 얽매여 국가백년대계를 졸속으로 결정할 수는 결코 없는 일 아니냐며 「충분한 연구검토」를 거듭 강조했다.
장관으로 취임한지 1일로 5개월 10일.
그 동안에 의과분업파동·일본뇌염유행·의료보험 일원화문제 등 잇달아 홍역을 치렀다.
장관이 되고 나서 무엇보다 달라진 것은 공무원을 보는 눈이라고 했다.
밖에선 다분히 불신의 눈으로 보아왔는데 막상 안에 들어와 보니 박봉에도 최선을 다해 국민에게 봉사하며 나름의 전문성을 다져나가고 있음을 새삼 느꼈다는 것이다.
특히 보사부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민생활의 모든 방면에 관련을 맺고 있어서 보사부장관이란 많은 국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즐거운 자리라고 느꼈는데 하필 세계적인 불황 등 어려운 여건에서 책임을 맡아 고충이 많다며 『팔자가 센 탓인가 보다』고 웃었다.
전임장관들로부터 「보사부장관은 업무파악에 1년은 걸리고 1년은 자신의 정책을 기획하고 1년은 그 정책을 실천해 적어도 3년을 해야 무언가 한가지 사업을 해낼 수 있는 자리」라고 들었는데 5개월 남짓 해보니 정말 그런 것 같다면서 아직도 업무를 배우는 중이라고 했다.
매일 밤 10시 취침, 아침 5시 기상의 생활리듬이 장관된 뒤부터 깨졌고 어찌나 바쁜지 몸이 둘이었으면 싶을 때가 많다는 김 장관은 자기시간을 갖기 어려운 것이 가장 아쉽다고 했다.
10·26전까지 반체제의 맹렬 여류였던 김 장관은 요즘도 잊혀진 사람, 소외된 계층에 대해 남다른 관심과 배려를 정부안에서의 발언으로 늘 강조한다고 들린다.

<문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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