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개발의 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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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선진공업국들의 정치, 경제, 군사적 각축이 첨예화하면서 특히 두드러지고 있는 것은 기술력의 경쟁현상이다.
인지를 극한 고도의 첨단기술들이 인류공통의 자산이 되기에는 아직도 요원하며 오히려 최근의 추세는 그 역으로 되어갈 만큼 경쟁적이고 배타적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러한 선진기술의 추세는 매우 우려할만한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과학기술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결과로까지 발전할지도 모른다. 이런 추세를 부채질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크게는 기술의 과점현상 때문이기도 하다. 기술 제국주의라는 비판이 가능해진 것도 주로 이 같은 기술의 독점화 경향과 연관되어 있다.
특히 우리처럼 축적기술이 빈약하고 기초조건이 취약한 개도국들로서는 최근의 기술경쟁격화를 극복하기 위한 장기전략의 수립이 국가적 과제라 아니할 수 없다.
제3회 기술진흥확대회의가 기술고도화를 위한 국제화전략을 구체화시킨 것은 비록 그것이 하나의 시도에 불과한 것이라 해도 기술개발이 국가적 과제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로 삼아야할 당위가 있다.
세계경기의 침체가 장기화하고 무역시장이 극도로 경새되고 있는 현실에서 기술혁신을 갈구하는 요청은 우리에게 있어서 훨씬 더 현실적이고 절박한 상황이다. 따라서 오늘의 기술개발을 보는 시각은 당연히 이 같은 현실적 요청과 미래지향적 기술축적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지 않을 수 없는 점이다. 이점이 특히 우리에게는 큰 부담이라 하겠다.
이 두 가지 목표는 서로 밀접히 연관되어 있어 어느 한쪽도 독자적으로 발전시키기 어렵다. 기술개발의 기획단계가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우선 장기적 과제로 제시되어야 할 목표는 이번 회의에서 제기된 것처럼 선진기술과의 수평적 교류가 가능하도록 기초과학기술 수준을 고도화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원대한 계획과 투자, 교육,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고 개선해 가는 긴 역정을 거친 뒤에 결실을 거둘 수 있다. 따라서 이 문제는 과학기술교육에 큰 비중이 두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교부와 과기처가 마련한 여러 장기계획이 이런 목표에 합당한지 정부관계기관과 전문가들이 중지를 모아 계속검토, 발전시켜야할 것이다.
이와 함께 중기계획으로 시급한 과제는 단계적 개발을 뛰어넘을 수 있는 바이 패스 전략을 구체화하는 일이다. 이는 중간개발과정을 뛰어넘어야 하는 어려움이 따르므로 그 요체는 집중적인 투자와 선진기술과의 협력이 될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정부재정과 민간, 특히 개발투자의 1차 수익자인 기업 측이 획기적인 결단을 내려야 가능하다. 오랜 불황에 시달려온 기업계가 그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조세나 기술인력유치확보, 자금지원 등 정부가 맡아야할 부분의 중요성도 이에 못지 않다.
관민일체의 집중적인 노력이 결합될 때 이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 가능한 일이다. 후자의 기술협력문제는 선진공업기술의 과감한 도입과 개방정책이 선결요건이 된다. 충분한 인센티브를 주고 선진첨단기술을 투자하도록 여건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 국내산업과의 마찰은 다른 차원에서 보정해 갈 수 있을 것이다.
기술의 벽을 뚫는 또 하나의 길은 선진기술과의 합작이며 이는 이미 여러 나라의 선례가 있으므로 유효한 돌파구가 될 수 있다. 다만 중기계획으로 집중개발 할 기술부문은 우리의 경제여건과 미래산업의 관점에서 엄선되지 않으면 자원의 낭비가 뒤따를 것이다.
기술개발에 관한 한 국가목표로서의 합일된 노력이 절실한 부문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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