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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룡호 추가구조 못 해 … 남은 희망은 구명뗏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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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김정수 사조산업 사장이 2일 부산 오룡호 사고대책 본부에서 실종 선원 가족들에게 구조상황을 설명한 뒤 머리를 감싸며 자리를 뜨고 있다. [송봉근 기자]

러시아 동쪽 서베링해에서 침몰한 사조산업 ‘501 오룡호’에 대한 2일차 수색에서 추가 구조자가 나오지 않았다. 탑승자 60명 중 7명은 1일 사고 직후 구조됐지만 52명은 실종 상태다. 나머지 한 명(한국인)은 숨진 채 발견됐다. 탑승자 가운데 한국인은 11명이다. 이 중 사망자를 뺀 10명의 한국인은 아직 실종자 명단에 남아 있다. 해상 조난사고 때 물에 빠진 사람은 보통 10~15도 수온에서 3시간 정도 살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상대책반을 운영하는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2일 “사고 지점 수온은 0~2도”라며 “게다가 파도가 거세 수색·구조작업 자체가 제대로 진전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정부는 실종자의 생존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보고 있다. 오룡호에 구명뗏목 8척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뗏목을 이용하면 100명 넘는 인원이 바다 위에서 구조를 기다릴 수 있다. 물속에 있는 것보다 생존할 수 있는 시간이 그만큼 길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 관계자는 “바다 경험이 많은 분들인 만큼 보온재를 입고 구명뗏목에 탔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며 “아직 희망이 있기에 최선을 다해 수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이날 수색에서 오룡호의 것으로 보이는 구명뗏목이 발견됐고, 정부는 선원들이 배에서 탈출할 때 뗏목을 한꺼번에 꺼내다가 일부가 빈 채 물 위에 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러시아와 미국의 구조 협조도 받고 있다. 사고 해역이 미국 알래스카와 러시아 극동 추코트가주의 중간 지점이어서 정부가 직접 구조단을 보내는 것보다 이들 나라의 도움을 받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사고 지점은 한국에서 4630㎞ 떨어져 있다.

  사고의 원인에 대해선 “나쁜 날씨를 무릅쓰고 무리하게 조업을 하다 생긴 일”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이날 한국인 실종 선원 가족들은 사조산업 부산사무소에서 한 사고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사고 며칠 전 ‘조업 실적이 좋아 목표 어획량을 채우고 추가 조업에 들어간다’는 전화를 받았다”며 “이 때문에 사조가 나쁜 날씨를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조업을 지시하다 사고가 난 게 아니냐”고 따졌다.

 오룡호가 만든 지 36년 된 노후 선박이라는 점도 사고 원인으로 거론됐다. 사고 당일 오룡호는 적정 조업 속도(3노트, 시속 5.6㎞)보다 느린 시속 2.8㎞로 움직였는데, 실종자 가족들은 이를 “배가 낡아 성능이 떨어졌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반면 임채옥 사조산업 이사는 “바람에 맞서 움직이다 보니 속력이 제대로 나지 않은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사조산업이 설명한 침몰 과정도 가족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김치우(53) 기관장의 동생 천식(49)씨는 “잡힌 명태가 배 안 창고의 배수구를 막아 바닷물이 들어찬 게 침몰 원인이라는 회사 설명은 말이 안 된다”며 “배수구 자체가 부실했기 때문에 사고가 났다”고 했다. 배수구 부실도 선박이 낡아 벌어진 일이라는 얘기다.

 오룡호는 1978년 1월 만들어진 뒤 2003년 스페인 회사가 리모델링 공사를 했다. 사조산업은 2010년 이 배를 사들였고, 2011년엔 태평양 조업을 위해 냉동시설을 고쳤다. 사조산업은 이후 러시아선급(RS)의 검사를 마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오룡호의 점검기관은 세월호 부실 검사 지적을 받은 한국선급이어서 선체 결함 의혹이 커질 수 있다.

 사조산업 측도 비상체제를 가동 중이다. 2일 오전 김정수 사조산업 사장이 대책본부가 세워진 사조산업 부산본부로 서둘러 내려갔다. 이미 사망한 선원에 대해선 향후 보상 절차도 준비하고 있다. 사조산업은 좌초된 선박에 선박법과 선원법에 의거해 선체보험·선원건재보험을 모두 가입해 놓은 상태다.

부산=김상진 기자, 세종=최선욱 기자, 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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