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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를 지키며」… 국내 독점 연재 <13><캠프데이비드 산장의 13일>|베긴 부부동반, 사다트 혼자와|「불편한 관계」애써 숨기는 눈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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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제1일(1978년 9월 5일 화요일)
「로절린」은 이날 하오 일찍 캠프데이비드에 도착하여「사다트」영접을 준비하고 있던 나를 도와주었다. 「사다트」부인 「지한」여사는 파리에서 병 치료를 받고있던 그들의 손자를 간호하기 위해 함께 오지 못했다.
나는 세 사람의 지도자 부인들이 캠프데이비드에 함께 머물면서 협상 분위기를 누그려 뜨려 주기를 바랐었다.
「사다트」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로절린」과 앞으로의 협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마도 「사다트」는 납득할만한 협정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며 노력할 것이고, 반면 「베긴」은 현 상태에만 족하고 있기 때문에 요르단 강 서안 또는 시나이반도 안의 이스라엘 정착촌에 대한 어떠한 변화도 원치 않을 것임이 분명했다.
「사다트」는 강인하고 대담한 인물도 세계 여론과 아랍권에서의 가장 중요한 지도자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그를 볼 때마다 그 자신이 「파라오」(이집트 역사 속의 영웅적인 임금)의 권위를 이어 받은 것으로 생각하며 또 스스로 운명을 지배하는 인물로 확신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신앙심이 돈독한「사다트」는 그 자신이 예배를 드릴 장소를 특별히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캠프데이비드에 우리가족이 머무를 때 예배장소로 쓰던 방을 그를 위해 별도로 꾸며놓았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약점을 보면 거의 참지 못하는 성격으로 중동전 때는 우유부단했던 동료 아랍지도자들을 비웃기까지 했으나 「베긴」의 힘과 용기에 대해서만은 존경을 하던 터였다.

<사다트 넥타이 안 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다트」역시「베긴」을 무엇인가 못마땅하게 여기고 불신하고 있었다. 이번 협상을 성공시켜야겠다고 결심한「사다트」는 그 때문에「베긴」에 반대하여 내편에 기울어져 있었다.
「사다트」는 지난 2월에도 부인과 함께 세계지도자들 가운데는 유일하게 캠프데이비드를 방문했었고 이번 회담기간에도 그가 전에 묵었던 도그우드(산딸나무)산장을 숙소로 정했다.
하오 2시 30분 그가 도착하자 나는 그가 숙소로 가 쉬기 전에 잠깐 이야기를 나누자고 제의했다. 「사다트」는 나의 숙소에서 주저 없이 그의 견해를 털어놓았다. 그는 캠프데이비드에서 단순히 앞으로의 협상 절차만이 아니라 중동문제의 전반적인 해결을 열망했다. 그는 「베긴」이 협정을 원하지 앉으며 가능한 한 협상의 진전을 늦추려 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는 영토와 주권, 두 가지문제를 제외하고는 유연성을 보일 것이라고 밝히고 협상과정에 나를 전반적으로 지원하겠으며 납득할만한 타결 책이 『주머니 속에 있다』고 말했다.
「사다트」는「베긴」이 신의와 성의를 갖고 협상에 응한다면 양국간의 외교관계 회복과 이스라엘에 대한 경제 단절 조치를 철회하는 내용을 협정에 포함시켜야 한다는데 동의했다. 「사다트」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 영토로부터 떠나야하며 어떤 협정도 팔레스타인 인들과 요르단 강 서안 지역, 그리고 앞으로 있을 이스라엘과 인근 국가들간의 협정 문제 등을 배제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사다트」는 곧 그의 숙소로 갔다. 그는 몇 년 전부터 경미한 심장병을 앓고 있어 건강에 신경을 썼다. 그는 휴식을 취한 뒤 다음날 아침 나를 다시 만나고 싶어했다. 나는 그와「베긴」이 서로간의 견해 차이를 탐색하는 기회를 가질 때까지 내 자신의 제안을 제시하는 것을 뒤로 미루겠다고 말했다. 「사다트」는 『앞으로 좋은 제안들을 내놓아 각하를 돕겠읍니다. 그리하여 미국 측이 제안을 할 필요가 없도록 하겠읍니다』고 응답했다.

<사무적인 베긴 수상>
두 시간 후 「베긴」수상이 산 위에 헬기로 도착했다. 부인「엘리자」여사도 몇 시간 후에 도착되리라는 소식이었다.「베긴」부부는 매우 금실이 좋아 보였으며 「로절린」이 나에게 하듯 「엘리자」여사가「베긴」에게 이번 회담동안 많은 도움을 주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애스펀 산장에서 그와 만났을 때 무엇인가 서먹서먹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분위기를 딱딱한 공식적인 것으로 만들지 않으려고 애썼으나 「베긴」은 그의 태도와 말투에서 철저하게 절도를 갖추고 있었다.
그는 매우 사무적인 태도로 협상 일정과 절차, 회담시간과 장소, 회담에 참여하는 보좌관 수 등에 관해서만 몇 마디 물었다.
내가 「사다트」와「베긴」을 따로따로 개별적으로 만난 다음 우리 셋이 그런 회담 진행 방법을 최종 결정하는 것이 어떠냐고 하자 그는 못마땅한 듯한 표정을 지은 뒤 각각 2명씩의 보좌관을 대동하여 회합을 갖기를 바랐다.
그는 그런 식을「3-3-3」으로 표현했다.
「베긴」역시 하느님이 선택한 국민의 장래를 책임져야하는 역할을 떠맡은 인물로 자신을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자주 하느님이「모세」와 다른 선지자들에게 내리신 계시를 들먹이며 성서 연구가임을 자부했고 이스라엘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해온 자신의 일생을 큰 자람으로 여겼다. 나는 그가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다른 한편으로 용어 하나 하나에 너무 신경을 쓰는 사람이므로 협상이 물 흐르듯 순조로울 수가 없을 것이라는 것도 예견했다.
「베긴」은 2천년이상 유대국가와 이집트사이의 협정이 단 한번도 없었고 따라서 이번 협상은 역사적으로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사다트」와는 달리 「베긴」은 캠프데이비드에서 일반적인 원칙에만 합의할 구상을 갖고 있었으며 이를 근거로 앞으로의 회담을 계속하면서 외무·국방장관들로 하여금 상호간의 견해차이를 해소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의견을 강력하게 거부하면서 중요한 문제들을 우리가 지금 해결하지 못한다면 후에 다른 사람들이 해줄 것을 기대할 수 없으며 현안문제들을 직접 우리가 손대야한다고 말했다.
협상에 들어가기에 앞서 우리는 개인적인 습관에서부터 여러 가지 차이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베긴」은 매우 예절바른 인물이었다. 그는 언제나 넥타이를 매고 코트를 입었으며 의전절차를 철저히 지졌다. 그는 「사다트」와 나에게 자신이 국가원수가 아니며 따라서 우리와는 동급이 될 수가 없다고 거듭 말했다. 그는 나와 만나는 장소를 나의 숙소인 애스펀(포플러)산장으로 국한시켰고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하며 언제나 보좌관들에게 둘러싸여 시사도 이스라엘 협상 팀과 이집트·미국인들이 함께 이용하는 라우렐 산장에서 들었다.

<사다트는 혼자식사>
반면 「사다트」는 넥타이 대신 깨끗한 스포츠 웨어를 즐겨 입었다. 그는 회담 이외의 시간엔 거의 대부분 자신의 숙소에 머무르면서 운동과 식사휴식을 취했다.
캠프데이비드에서「사다트」는 이른 아침마다 같은 시각에 4㎞의 산책을 즐기곤 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라우렐 산장의 식당에 가는 일은 결코 없었으며 혼자서 식사하는 것을 좋아했다. 내가 즉흥적으로 그를 만나고 싶을 때도 전화를 건 뒤 그의 숙소로 가야 했다.
첫날 저녁 만찬 후 「베긴」과 내 숙소에서 단둘이 만났다. 「베긴」은 낮이나 밤이나 항상 일을 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이날 밤 그를 만난 가장 중요한 목적은 그로 하여금 지나친 긴장을 풀도록 하고 깜짝 놀랄만한 일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실어주는 얼이었다. 나는 이스라엘이 처한 미묘한 입장과 까다로운 문제들을 이해한다고 말하고 다시 한번 이번 회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무단 전재·출판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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