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자의 우편번호(3)|「저속」의 짚신·「과속」의 조오리 문화를 음미해보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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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정말 그래요. 일본의「아시나까·조오리」가 빨리 뛰기 위해서 만들어진 신발이라면 한국의 짚신은 뛰지 못하도록 만들어진 신발이라고 할 수 있읍니다. 「죽장망혜」란 말이 있듯이 짚신에는 창이나 칼이 아니라 대지팡이가 어울리는 신발인 것입니다.
그것은 불안한 까치 발걸음이 아니라 여덟 팔자로 유유히 걷는 걸음걸이에 알맞은 소요의 신발인 것입니다. 병사들처럼 행군을 하거나, 도둑처럼 담을 뛰어넘거나, 염탐꾼처럼 살금살금 다가서기 위해서는 짚신을 차라리 벗어 던지는 것이 편합니다.
정말 그래요.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짚신이고 고무신이고 급할 때에는 반드시 신을 벗어들고 뛰어야만 했읍니다. 그래서 「맨발로 뛴다」는 비유가 지금까지 시퍼렇게 살아남아 있는 것이지요.
신발만이 아닙니다. 뛸 때에는 신을 벗어 던져야만 했듯이 싸움을 하거나 무엇인가 급한 일이 생길 때에는 또 웃통을 벗어 던져야만 했습니다. 역시 여기에서 또 「알몸으로 뛴다」는 말이 생겨난 것입니다.
한국의 의관은 백의라는 그 색채에만 특성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소매와 바짓가랑이가 넓다는데 또한 그 특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헐렁한 바지와 넓은 소매는 짚신과 마찬가지로 속도를 억제하기 위한 장치였던 것입니다. 소매와 바짓가랑이가 넓은 한국의 그 바지저고리는 속도라는 화살을 방지하는 시간의 갑옷이기도 했지요. 그러니까 한국인에게 있어 속도는 바로 「발가벗고 맨발로 뛰는」삶이었던 것입니다.
옷을 입고 신발 신고 세상을 제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와는 반대로 생을 저속화하는 것이었고 그러한 반속도 주의는 한국문화의 도처에서 발견될 수 있읍니다. 말(마)이 단지 빠르다는 그 이유에서 선비들의 정신주의 목록에서 제거된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천하를 주유하려면 청우를 탄 노자처럼 말이 아니라 소를 타고 다녀야 된다고 믿었던 것이지요. 「주마간산」이라는 말이 있듯이 자연을 깊이 보고 사랑하는 자에게 있어 말은 너무나도 빠르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적토마가 아니라 인간의 보행속도로 세상을 살아가려 했던 저속주의자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소를 타도 거꾸로 타는 것이 멋이었고 나귀를 타도 발을 저는「전나귀 라야 풍류였던 것입니다. 최항의 무신정시에 「저는 나귀를 거꾸로 타고, 아무려나 좋아라」가 그것입니다. 「쉬엄쉬엄」사는 것이 그 생의 철학이었던 것이지요.
「뛰지 말아라」「뛰지 말아라」. 시문을 읽어도 「짚신」이나「바지저고리」의 그 소리가 들려옵니다. 왜적이 쳐들어와 의주로 피난을 떠났던 임란 때에도 그 교훈은 여전히 「뛰지 말아라」였습니다. 피난길에 소나기가 쏟아지자 모든 사람이 앞을 다투어 뛰어가는 것을 보고『어리석은 자들이로다. 뛰어가면 앞에 오는 비까지 맞을 것이 아닌가』라고 말하면서 혼자 오는 비를 모두 맞으며 유유히 걸어갔다는 이항복의 일화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어찌 소나기만을 두고 한 소리이겠읍니까?
그러나 당신마저도, 현대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낙오자가 되었다고 한탄하는 당신마저도 이러한 저속문화주의자들을 비웃을 것입니다.
모두들 뛰어갈 때 홀로 비맞는 자를 바보라고 부를 것입니다. 짚신을, 그리고 소매 넓은 저고리를 벗어 던지라고 할 것입니다. 소의 잔등에서 내려 어서 뛰어가라고 외칠 것입니다. 쉬엄쉬엄 살려고 한「전나귀의 사상 때문에 우리는 남의 민족에 지배를 당했고, 굶주렸고, 어머니와 아내와 자식들에게 죄인이 되었다고 가슴을 칠 것입니다. 남들이 저 백m 트랙을 몇 바퀴씩 돌 때에도 우리는 아직 스타트라인에 서서 하품을 하고 있었기에, 이 좁은 땅덩이마저 반 동강이가 났다고….
그렇지요. 「발가벗고 맨발로 뛰는 이 시대」에서 누가 다시 저 짚신을 신겠습니까. 박연암을 아시지요. 맨 먼저 근대정신을 흘낏 훔쳐본 박연암이 무엇보다도 먼저 도전하려 한 것이 바로 그 저속주의문화였던 것도 우연이 아니지요. 그는 속도가 무엇인지를 알았기 때문에, 한국의 그 전통적인 바지저고리를 벗어 던지고 호복으로 갈아입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의 『허생전』을 읽어보십시오. 그것은 한국인의 신분을 감추고 청나라에 잠임하려할 때에만 그 「넓은 소매」가 장애물이 된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금세 깨닫게 될 것입니다.
말을 달리고, 칼을 휘두르고, 창을 찌르고, 활을 쏘려면 넓은 소매(광수)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 이를테면「저속」의 옷을 「고속」의 호복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근대의 척후병이었던 허생의 꿈이었읍니다. 유목민의 옷인 호복은 가죽띠와 가죽신에 소매가 좁아, 빠른 말을 타고 활을 쏘기에 좋은 것이므로, 조의 무령왕처럼 나라가 강해지기를 원한다면 예법의 옷을 벗고 호복인들 못입겠읍니까.
우리의 근대화는 짚신을 내던지는데서 시작되었습니다. 넓은 소매의 저고리를 벗어 던지는데서 다이빙은 시작되었습니다. 쇠잔등에서 내리고 전나귀를 내쫓는데서 문명의 그 샛별이 떠올랐습니다. 속도의 시대가 온 것이지요.
발뒤꿈치를 망에 대지 않고 까치발로 뛰어다니는 「아시나까·조오리」의 후예가 큰 소리를 치는 시대가 온 것이지요.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를 시대착오주의자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일본의 짚신「아시나까·조오리」가 밉다고 해서 경이로운 이 세기의 대낮 속에서 구세기의 유물인「짚신」을 신고 긴자 거리로 혹은 뉴욕 5번가로 가자고 외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속문화」에 희생된 우리가 이제 거꾸로「과속문화」에 희생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바로 당신이요, 나라는 이야기를 하고자 한 것입니다. 우리가 탄 현대의 그「전나귀」를 조용히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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