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 "문고가 생명인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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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생명이 한국의 '문화코드'인 교보문고를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보험회사(교보생명)가 자회사인 서점(교보문고)을 키우자니 관련법에 저촉될 가능성이 있고, 그렇다고 손 놓자니 교육(보험)과 독서(서점)를 통해 청소년의 지적 성장을 이끈다는 창업정신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 교보문고 증자 추진=교보생명은 최근 자회사인 교보문고의 자본금을 늘리기 위해 금융감독위원회에 질의했다. 교보생명이 이 같은 질문을 한 것은 바로 보험업법 때문이다. 현행 보험업법에 따르면 보험사는 보험사와 관련이 없는 업종을 자회사로 둘 수 없다.

교보생명이 교보문고를 설립한 1980년 당시에는 이런 제한이 없었으나 98년 2월 보험업법 시행령이 바뀌면서 제한이 생겼다. 보험업법이 개정되기 전에 자회사로 인정받았기 때문에 교보문고를 자회사로 두고 있는 데는 큰 문제가 없으나 이러한 자회사에 대한 증자를 할 경우에는 아직 명확한 유권해석이 없다. 금감위 관계자는 "19일 금감위.증선위 합동 간담회에서 이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라며 "교보문고가 설립된 뒤 관련법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결론을 내리기도 복잡하다"고 말했다.

◆ 왜 증자 서두르나=요즘 온라인 서점 등의 약진으로 교보문고 매출이 정체상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금을 늘린 뒤 투자를 많이 해 수익성을 높여야 하지만 보험업법에 묶여 창립 후 26년째 납입자본금은 10억원에 묶여 있다. 교보생명은 금감위가 '(교보문고 증자에) 하자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리면 앞으로 10년간 1500억원을 증자해 교보문고를 지식문화 전문회사로 육성할 계획이다.

교보문고의 증자를 추진하고 있는 교보생명도 현재 자금 사정이 넉넉지 않다. 교보생명은 향후 공격적인 사업 등을 위해 2500억~5000억원가량이 필요하다고 보고 증자를 추진하고 있지만 사실상 교보생명의 지분 41%를 보유하고 있는 자산관리공사의 반대로 아직 진전이 없는 상태다. 지난해 교보생명은 3817억원의 순익을 올렸으며 교보문고의 순익은 27억원이었다.

◆ 금융지주사 전환도 주저=교보생명은 또 교보문고 때문에 금융지주회사 형태로 가는 방안에 대해서도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금융의 대형화.통합화.국제화 추세에 발맞춰 주요 금융회사들이 금융지주회사로의 변신을 서두르고 있지만 교보생명은 '버릴 수 없는' 교보문고를 자회사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은 "금융지주회사로 가면 교보문고는 떼어내야 한다. 굉장히 큰 문제라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 교보문고 '내리사랑' 왜=교보문고와 대주주의 관계는 교보생명 창업자 고(故) 신용호 전 회장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58년 대한교육보험(옛 교보생명)을 설립한 신 전 회장은 80년 종로1가 1번지에 지하 3층, 지상 22층의 본사 사옥을 설립했다. 당시 지하 공사가 시작되자 '황금상가'라는 전망에 곳곳에서 임대 요청이 밀물처럼 밀려 왔다. 하지만 신 전 회장은 지하공간에 서점을 차리면 어떠냐고 '돌출의견'을 냈다. 직원들이 말렸지만 "창업이념을 구현하는 데 이보다 좋은 기회가 있을 수 없다"는 그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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