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근로자가 골프 치는 세상 올 때까지 골프 끊겠다 … 20년째 지키는 약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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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용 지사가 한옥 모양의 새 경북도청 조감도 앞에서 도정 청사진을 밝히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1995년 골프를 끊었다. 경북 구미시장 선거에 나선 게 계기였다. 공장이 많은 구미에서 당선되려면 근로자들 지지가 꼭 필요했다.

 당시 그는 근로자들 앞에서 작고한 누나 얘기를 꺼냈다. 어려운 형편 때문에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공장에서 하루 20시간 가까이 일하다 요절한 누나였다. 얘기를 들은 근로자들이 제안했다. “약속 하나 해 달라. 우리 근로자들이 골프를 칠 수 있는 세상이 올 때까지 당신도 골프를 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제안을 받아들였고, 구미시장이 됐다. 그 뒤 김 지사는 여태 골프를 치지 않고 있다.

 김 지사의 인생 초반은 고(故) 박정희 대통령과 비슷하다. 둘 다 경북 구미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고, 대구사범학교를 나와 처음엔 초등학교 교사를 했다. 김 지사의 첫 부임지는 박 대통령이 다녔던 구미초교다.

 교사로 지내면서 공부를 더 하겠다며 청구대(현 영남대) 야간부에 들어갔다. 고시에 합격하는 학생을 보고 자극받아 자신도 도전해 합격했다.

 그러는 사이 서른다섯이 됐다. 결혼도 못한 상태였다. 당시로선 비정상적으로 늦은 나이였다. 동네 어른이 중매를 섰다. 상대는 경북 안동에서 국회의원이 되고, 방송사 사장을 역임한 명문가였다. 김 지사는 “내세울 건 고시에 합격했다는 것뿐이었는데, 무슨 생각이었는지 장인 되실 분께서 흔쾌히 수락하셨다”고 말했다. 대구 금호호텔(현 아미고호텔)에서 열린 결혼식에서 어머니는 “우리 관용이 장가간다”며 덩실덩실 춤을 췄다고 한다.

 병무청과 국세청, 청와대 민정수석실 비서관 등을 거쳐 구미시장이 됐다. 3선한 뒤 “경북 전체를 디자인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 도지사에 도전했고,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도지사로도 3선했다.

 전통시장을 지나갈 때 좌판 아주머니와 마주치면 꼭 손을 잡는다. 일찍 홀로 된 뒤 시장 행상을 해서 자신을 키운 어머니 생각 때문이다. 김 지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 모습에 도민들이 ‘일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지만 인간은 괜찮아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그게 구미시장으로, 또 도지사로 6선까지 하게 된 밑바탕이 됐다.”

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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