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선후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금주엔 단수로서 가작과 본보기가 될만한 작품들이 많았다. 기뻣다. 그때문에 몇분을 더 선했다. 왜 시조에서 단수를 중요시하는가. 이 짧은 시조형태는 곧 시조의 기본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단수르 성공시킬수 있을때, 비로소 두수, 세수, 나아가 보다 긴 연시조도 가능하게 된다. 또한 시의 생명은 가장 짧은 언어속에 가장 많은 내용과 의미(감동)가 함축되어야 한다는 시의 첫걸음으로 보아도 단수의 생명과 의미는 더욱 자명하게 드러나게 되어 있다.
「걸음을 멈추고」는 어디서 보았음직한 것인데 참으로 잘 포착했다. 가을을 단수에 담되이토록 깜찍하고 정겨울 수가 있겠는가. 어느 한구석 허술한데가 없이 삼장이 모두 똑 고르다. 모름지기 단수는 이런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압축과 묘미를 아울러 얻은 수작. 칭찬해 주고 싶다.
「호박」 또한 가을을 호박에 얹어 표현했는데 상당한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만가을 빛살에 익혀 속살마저 붉었다>의 종장이 호박을 투박하고 물씬하게 드러내고 있다.
「제수」는 아주 쉽게 쓴 것인데 가슴에 와닿는다. 뭐 추석의 간접적인 노래지만 <아버님 햇밤 한됫박 에미하고 샀읍니다>에선 찡하고 감동이 온다. 진실 때문이다. 그러나 한자의 오차도 없는 정형을 꼬박 박아쓰고 있는 점이 조금 답답하기도하련만l.
「산사에서」는 독자시조로서 별로 나무랄데가 없다. 잘 짜여져 종장까지 맺어 놓았는데 <사미승 젖은 두 눈엔 고향이 와 잠긴다>라고 하는 종장의 경우, 관념적이란 것을 떨칠수가 없다.
이미 보아 옴직한 이미지라는 말이다. 그러니 덜 새로와보인다. 유념하시길.
「신흥사」는 전자와 유사한 이미지의 것인데 새롭다. <설악뛰는 가슴 지그시 눌러두고>의 시작이 그렇다. 그리고<한나절 매미소리가 이 적막을 닦고있다>의 결구가 진경을 보게한다.
「코스모스」는 특히 종장에서 빼어난 솜씨를 보여 전체를 살려놓고 있다. <하르르 꽃물결치면 높아지는 하늘빛>이 그것.
「바람」은 출발이 좋다. 둘째장은 작자의 마음이고, 그러기에 넋을 놓고 따라간다의 종장표현이 무게를 더해주고있다. 「층계를 오르며」는 인생을, 시의 길을 오르며라 해도 좋을듯. 생각의 길도 이런 성장이었으면 싶었다. 무리가 없다. 이상범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