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월7만여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계씨는 해방후 육사 8기생으로 국토방위의 최일선에서 혁혁한 무공을 세우고 5·16직전 예편, 독립유공자로 연금으로 생계를 이어왔다. 그는 또 71년 벽제 일인위령탑 방화사건을 주도했던 인물.
계씨의 고향은 평북 선천. 신의주공업학교를 졸업한 이듬해인 43년12월 생계가 막연해 평양시지원병훈련소를 찾아가 일본군에 입대했다.
중국산서성운성에서 복무하던 계씨는 44년5월 6개월에 걸친 중원작전을 마친후 벌어진. 회식장에서 일본인 중대장 「후나끼」(주목정웅)가 한국인병사들에게 「조센징」이라고 조롱한 것에 격분해 동료 2명과 함께 일본군도로 「후나끼」의 목을 베어 죽인후 병영을 탈출, 한달후에 서안의 광복군 제2지구대에 입대했다.
해방후 49년 육사제8기 4반을 수료한후 병기장교로 복무하다 60년7월 중령으로 예편했다.
계씨는 지난 71년8월22일 노복선·이덕산씨등과 함께 경기도고양군벽제에 세워진 일본인위령탑을 불사르고 파괴해 국민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