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라크 민주화 꿈 버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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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미국은 이라크를 '중동의 새로운 민주주의 국가'로 탈바꿈시킨다는 꿈을 사실상 버렸다."

미 워싱턴 포스트는 14일 이라크전이 발발한 2003년 3월 이후 28개월 동안 이라크 민주화 프로젝트를 담당해 온 미국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신문은 "익명을 요구한 관리들은 전쟁 전 세웠던 목표가 비현실적이었다고 토로했다"며 "그들은 앞으로 이라크에서 성취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목표치도 하향 조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 "이슬람 신정(神政)국가될까 걱정"=미국은 당초 이라크를 ▶민주주의 국가▶석유 자급의 산업구조를 갖춘 나라▶치안.경제 불안에서 해방된 사회로 바꾼다는 목표를 세웠다. 올 연말 제정될 이라크 신헌법에는 이를 구체화하는 내용을 담을 방침이었다. 그러나 시아파와 쿠르드파가 과도한 '정치적 특권'을 요구해 미국이 골치를 앓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특히 헌법에 자치권을 명시해 달라고 한 시아파의 요구에 미 관리들은 정신을 잃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이와 관련, 한 미국 관리는 "우리가 시아파와 쿠르드파의 힘과 정서를 과소평가했다"며 "미국은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실제로는 신정 공화국의 형태가 될 것이라는 점을 서서히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연말까지 시아파와 쿠르드파를 설득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일단 헌법을 제정한 뒤 개정을 통해 이라크를 점차 민주국가로 만들어 간다는 차선책을 검토 중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 저항세력의 흉포성도 문제=미국이 이라크에 대한 기대치를 낮춘 데는 외국인 전사까지 가세한 저항세력의 흉포한 저항도 큰 몫을 하고 있다고 신문은 보도했다. 이라크에 주둔 중인 미군 전사자는 14일 현재 1846명이다. 앞으로도 얼마나 죽을지 모른다. 그래서 미군은 이라크에서 철수하기 전 저항세력을 완전히 '격퇴(defeat)'한다는 목표를 축소조정했다(diminished). 미군은 또 이라크군이 전투력을 완비하기 전에 치안권을 넘기고 철수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한 미군 관리는 "미군에게는 이제 이라크 민주화라는 원래 목표보다 어떻게 하면 이라크에서 잘 빠져나갈 수 있을지가 중요한 목표가 됐다"고 말했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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