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BOOK/즐겨읽기] 뻔한 인물, 뻔하지 않은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인터뷰 전문 기자가 되고 싶다는 뜻을 밝힌 어느 잡지의 한 새내기 기자는 "상사에게 기특하다며 칭찬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사람 자체보다는 패션.뷰티.인테리어 등 주변적인 것에 관심이 더 많은 게 요즘 젊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타인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아쉬운 때, 이 심층 인터뷰집은 쉽게 눈에 띈다. 더구나 저자 김경(33)은 지난해 낸 에세이집'뷰티풀 몬스터'로 역량을 인정받은 '몬스터(괴물) 글쟁이'가 아니던가.

저자는 사람의 겉과 속을 파헤친다. 심지어 상처까지도 끄집어낸다. 이를테면 완벽해 보이는 배우 장동건이 전기.후기.전문대.체대까지 원서를 넣으며 여섯 번이나 불합격 통지를 받았던 삼수생이었다는 것도…. 가슴앓이 끝에 배우가 되어 정체성을 찾은 그가 지금 행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말이다. 모두가 칭찬했지만 "사람들이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분위기에 휩쓸리듯 밑도 끝도 없이 강혜정이 연기 잘한다고 믿게 된 것 같다"며 자신은 한참 더 무너져 봐야 한다고 선선히 털어놓는 모습의 배우 강혜정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댄스그룹 DJ DOC.시인 함민복.황신혜밴드 리더 김형태.사진가 아라키 노부요시.화가 백현진.건축가 승효상.개그맨 신동엽.레스토랑 컨설턴드 신성순.헤어 디자이너 이상일.배우 김윤진.미술작가 양혜규.건축가 조성룡.홍콩 배우 주성치.탤런트 주현.가수 크라잉넛.가수 한대수.대통령 노무현…. 진지하기 그지없는 소설가 김훈부터 무대 위에서 앞구르기를 하던 싸이까지, 독설을 다듬듯 자신만의 세계를 갈고 닦은 사람(저자는 이를 '단독자'라 명명했다)들이 저자의 손끝에서 새롭게 태어났다. 이 스물 두 명(그룹 DJ DOC와 크라잉넛은 편의상 한 사람으로 셈했다)의 인터뷰 모음을 내리 읽다 보면 그들의 체취에 흠뻑 젖게 된다.

거기에 한 명 더. 저자인 김경이란 사람을 느끼는 재미도 만만찮다. 그는 시인 함민복을 만날 땐 철저한 문학 소녀가 되어 선문답을 주고받는다. 악동 그룹 DJ DOC 앞에선 '한 때 좀 놀았던 분위기'의 옷차림으로 말놀이에 나선다. '이 시대 마지막 보수주의자'라고 주장하는 싸이와 이야기를 나누다가는 '어떻게 해서든 이 방종한 도련님에게 상처를 주고 싶다'는 오기가 발동한단다. 매혹의 대상을 만나면 기쁘게 젖어들어 흡수한 뒤, 유통기한이 지나기 전에 물기 가득 머금은 몸뚱아리를 꾹 눌러 짜내는 스펀지…. 그게 바로 저자가 밝힌 김경이란 인터뷰어의 본질이다.

잡지 '바자' 에디터인 저자는 패션 바닥에서 '훔치고 싶은 글발의 소유자'로 통한다. 300여 페이지를 넘기는 도중 문장 호응에 맞지 않는 조사가 눈에 걸리는 경우가 몇 번 있다. 휴, 다행이다. 이 스물 세 사람의 인생에 푹 젖어들기 전에 정신을 차리도록 도와주니까.

이경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