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고보자 풍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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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요즘 어느 공직자는 「토요일 격주근무제」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사견」이라고는 하지만, 놀고 보자는 무드가 사회일각에서 일고 있는 것은 결코 반가운 현상이 아니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런 놀고 보자는 풍조가 만연하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우선 관변에서 부터 이런 풍조가 권장되고 있다면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백일몽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여기에 덩달아 무슨 경제단체라는 데서도 주5일 근무제를 굉장한 자랑거리인양 광고를 하고 있다.
도무지 뭐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겁없는 생각이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경제가 이제까지 무엇을 가지고 버티어 왔는가. 밤도 낮도 없이, 토요일도 휴일도 없이 부지런히 일해온 보람이 아닌가.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상황은 어떤가. 우리는 지금 세가지 이변을 보고 있다.
하나는 수출목표 미달이고, 또 하나는 세수 부진이고, 또 하나는 국채발행이다.
그 어느 것 하나도 심각하지 않은 것이 없다.
모두가 불길하고, 나쁜 징후들이다.
내년의 경제전망이 별로 호전될 기미가 없어 보인다. 정부는 아예 5천5백억원의 적자예산을 편성했다. 제1차 오일쇼크 이후 적자예산의 편성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모자라는 5천5백억원을 국채를 발행, 충당할 계획이다.
국민경제가 흔들거리니 나라살림도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국채는 결국 온 국민의 부담으로 소화될 수밖에 없다.
수출 역시 마찬가지다. 올해 수출목표는 2백47억달러, 이것도 당초 수준에서 하향 조정된 목표다. 그러나 올 연말까지 아무리 우리가 노력해도 수출실적은 2백19억달러밖에 달성못할 전망. 목표보다는 엄청나게 뒤떨어지고 작년 실적 2백12억달러에 비해도 겨우 3·3%의 증가밖에 안된다.
이같은 형편에서 과연 우리가 노는 날만 많다고 즐거워할 수 있겠는가.
요즘 서울의 밤하늘, 스카이라인을 한번 바라보라. 캄캄한 빌딩은 관청가 뿐이다. 밤10시가 지나도 불이 꺼지지 않는 기업들이 얼마나 많은가. 공장도 마찬가지다. 이들이야말로 우리시대의 영웅들이다.
바로 이들을 격려해주지는 못할망정, 공직자중엔 명분도 없는 생색으로 휴일을 권장하고 있는 것이다. 편히 놀자는 누가 놀라고 권장하지 않아도 논다.
선진국과는 경제단계가 다른데 그것도 모르고 놀고 보자는 풍조에 한눈을 팔고 있다. 그런 백일몽은 빨리 깰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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